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지난 25일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부인 이설주를 깜짝 공개했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생 부인을 공개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김정은은 6일 모란봉악단 공연에서 미키마우스 캐릭터와 미국 영화 ‘로키’ 주제가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지난달 말엔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체제 확립에 대하여’라는 ‘6·28 방침’을 신경제정책으로 제시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파격 행보에 대해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과의 차별화에 나섰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의 행보를 북한의 본격적인 개혁·개방 신호탄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린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개혁·개방에 나설 것’이라고 보는 반면 다른 전문가들은 ‘군부 등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쨌든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에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좀 더 유연한 대북 대응을 통해 개혁·개방의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밑으로부터의 지지’ 노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의 최근 행보에 대해 “통치 행태와 리더십에서 김정일과의 차별화에 나선 것”이라며 “김정일이 폐쇄적이고 은둔형이었다면 자신은 개방적 리더십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은 개방적인 태도로 인민들과의 스킨십을 보여주며 친근감을 강조하고 있다”며 “이는 밑으로부터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의 개방적인 행보는 스위스 유학 경험 및 젊다는 특성과 연결돼 있다”고 풀이했다. 장 연구원은 “김정은이 ‘국제적 추세’를 강조하는 것은 그의 국제적 감각뿐 아니라 도탄에 빠진 북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개방할 수밖에 없는 현실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본격적 개혁·개방으로 갈까?

김정은의 개방적 태도가 북한의 개혁·개방을 예고하는 것이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홍 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권력체제를 공고히 하려면 주민들의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개혁·개방으로 경제 살리기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강성대국의 3대 요소(군사 사상 경제) 중 경제가 가장 미흡한 만큼 앞으로 경제 회생을 위해 개혁 조치들을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김정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는 내년 초 파격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조동호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은의 행보를 개방·개혁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건 무리”라며 “북한의 특성상 체제 변화까지 수반되는 개혁 조치가 이뤄지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원도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정은이 각종 조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 원칙 고수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고 보고했다.

◆정부는 북 개혁·개방 유도해야

조 교수는 “김정은의 북한이 개방 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실제 개방의 폭과 범위는 한국과 중국 등의 대북정책에 영향받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북한이 확실히 개방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부터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는 대북 경제제재인 ‘5·24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도 “정부가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대북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전향적인 제안을 하고, 추석을 전후해 인도적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 등을 추진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