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는 한반도 서쪽 끝 변산반도에 있는 1300년 고찰 내소사(來蘇寺)에 다녀왔다. 17년 된 역사연구모임 자운회 회원들과 함께 전주 한옥마을을 거쳐 부안지역을 답사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을 다녀보면 자연의 큰 거울에 비쳐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고, 뜻하지 않은 만남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나는 이번 답사에서 해안(海眼) 큰 스님으로부터 평등의 참 뜻을 깨우치는 행운을 얻었다.

능가산의 품안에 안긴 아름다운 도량 내소사에 이르려면 600m 전나무 숲길을 지나야 한다. 그 끝자락에 해안대종사(1901~1974)의 행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안내하는 자원봉사자가 그 앞에서 해안 스님이 지은 ‘평등’이라는 시를 읊었다.

“산은 높아야 하고, 바다는 낮아야 하느니, 산과 바다가 가즈런하여 보라, 중생들이 어떻게 살 수 있는가. 조리는 새야 마땅하고 항아리는 막혀야 하나니, 학의 목이 길다고 끊으면 병이요, 오리 다리가 짧다고 이으면 근심되리, 끊지도 잇지도 말고 생긴대로 두어두소.”

동쪽엔 경봉(鏡峰) 큰스님이요, 서쪽엔 해안 큰스님이라고 했다. 내소사에 계시면서 호남불교에 선풍(禪風)을 일으키신 해안 대종사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낮춰 범부(凡夫)라고 불렀다. 자신의 법명도 ‘바다의 눈’이다. 가장 낮은 겸허한 바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셨다. 바다가 높은 산을, 오리가 키 큰 학을 탓하지 않고, 서로 존중하는 아름다운 실존의 세상을 깨우쳐 주셨다. 해안 스님은 부처의 본성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개미, 벌레까지도 평등해 차별이 없다고 보면서도 ‘조리는 새야하고, 항아리는 막혀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고 불교 신자는 아니다. 법학도로서 고대 로마법을 공부하면서 정의(正義)는 “각자에게 그의 것을 주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 말의 뜻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면서도 그 깊은 맛을 터득하지 못했으나, 해안 스님께서 생생한 비유를 통하여 정의나 평등은 서로의 참모습을 존중하는 그것이라고 깨우침의 죽비를 내리치신다.

조선후기 비판적 신지식인이였던 연암 박지원은 “해와 달은 비록 오래됐으나 그 빛은 날로 새롭다”면서 옛 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강조했다. 이렇듯 선현들의 말씀은 시공을 뛰어넘어 혼탁한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하는 생생한 교훈이 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해 땀과 피를 흘렸다. 이제 해안 스님의 말씀을 새겨 우리가 추구해온 자유와 평등이 상대를 부정하는 대립과 갈등의 불씨가 아니라 서로 인정하는 ‘상생과 조화의 가치’임을 깨우쳐야 한다. 학은 멀리보고 오리는 헤엄을 잘 친다. 무조건 학의 다리를 자르고 오리의 발은 잇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진환 < 법무법인 충정 대표변호사 zhkim@hmplaw.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