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탓…5억 대출자 4천만원 상환 '폭탄'
2009년 인천 송도에서 대출금 5억원을 끼고 9억원짜리 주상복합아파트(공급면적 180.59㎡)를 산 나모씨(55)는 다음달 대출금 만기를 앞두고 은행에서 안내장을 받았다. 은행은 나씨가 구입한 아파트 값이 7억원으로 떨어져 집값 대비 대출금액의 비율인 담보인정비율(LTV)이 60%를 넘게 됐다며 원금의 일부를 갚아야 한다고 통보했다. 처음 집을 구입할 당시 나씨의 LTV는 55.5%였지만 올 들어 집값이 급락하면서 LTV가 71.4%로 높아졌다. 은행은 다음달 만기 때 LTV 초과금액의 절반인 4000만원을 우선 상환해야 만기 연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나씨는 “집값이 크게 떨어져 속이 상했는데 원금 일부까지 갚아야 한다고 하니 밤잠을 설치고 있다”며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에서 돈을 융통해야 하는데 이자 부담이 커질게 걱정이다”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만기가 돌아온 빚 일부를 갚아야 하는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일제히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내놓고 있다.

◆LTV 70~80% 대출 급증

시중 은행들은 담보인정비율(LTV)을 평균 60% 수준으로 유지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동산 가격 하락세 때문에 LTV가 70~80%에 이르는 경우가 왕왕 생기고 있다. 집값이 추가로 떨어지면 대출부실 위험이 커진 은행들이 만기를 연장해주면서 5~20%씩 원금 상환을 요구하는 이유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집값이 계속 하락하기 때문에 일부 LTV 비율이 높아진 만기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는 가급적 대출자의 형편에 따라 만기연장 시 원금의 10%를 상환하도록 하거나 분할상환대출로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말에는 만기연장 시 원금 상환 요청 비중이 10% 수준이었다면 현재는 15~20% 수준까지 늘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일부 담보 부족이 발생하는 경우 부족분을 신용대출로 바꿔준다”고 말했다. 연 4~5% 금리의 담보대출을 연 7~8% 신용대출로 바꾸면 대출자의 금리 부담은 크게 늘어난다.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수도권 외곽에 원금 상환 요청 몰려

시중 은행들에 따르면 원금 상환 요청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곳은 수도권 외곽지역이다. 집값이 2~3년 전보다 20~30%씩 떨어진 아파트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경기도 용인시의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은 2008년 초에 비해 17.32% 하락했다. 김포(14.38%) 파주(11.8%) 등도 10%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용인 동백점공인 관계자는 “용인 동백지구 백현마을 등은 2007년에 비해 집값이 30~40%나 떨어졌다”며 “집주인들이 담보대출 연장을 못해 고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김포 감정동 삼성공인 관계자는 “인근 85㎡ 아파트 값이 2억3000만원으로 4년 전보다 1억원은 빠졌다”며 “집값 급락에 이자 부담, 원금 상환 요청까지 겹쳐 아파트를 팔려는 집주인이 많지만 매수세가 없어 문제”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아파트뿐 아니라 상가 등 수익형부동산 자산가치가 떨어진 경우에도 매몰차게 원금 회수에 나서고 있다. 경기 안산에 거주하는 박모씨(68)는 보유하고 있는 아파트 단지 내 상가 50㎡ 감정가가 작년 5월 1억2500만원에서 올해 1억1000만원으로 10% 이상 하락했다. 이 때문에 은행에 빌린 돈 1억원 중 1000만원가량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1년 만기연장을 받았다.

이상은/강동균/김진수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