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60억 달러 對이란 수출 전면중단 '위기'
“내년 봄이면 이란 중앙은행의 잔액이 바닥날 텐데 큰 일입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이란과 ‘5+1’의 핵협상 전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5+1’은 미국 영국 등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 등 6개국 중재그룹을 뜻한다.

이번 협상은 이란산 원유 수입국과의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미국 국방수권법(28일)과 유럽연합(EU)의 금수 조치(7월1일) 발효를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자리다. 정부는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도 문제지만 원유 수입 대금을 활용한 수출이 전면 멈추는 경우를 더 걱정하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은 물론 이란과의 교역으로 먹고 사는 2000여개 중소 수출업체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60억달러 수출시장 닫히나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이란 수출 금액은 60억6827만달러로 전년 대비 32.0% 늘었다. 올해도 4월까지 수출이 22억8744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5%나 증가했다.

이란과의 교역이 급증한 것은 국제 제재에도 그동안 우리나라 등 일부 국가만 예외적으로 원유 대금을 활용한 중개무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0년 10월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 대금을 국내 은행에 개설한 이란 중앙은행 계좌에 예치하고, 수출대금을 이 돈에서 꺼내 쓰는 방식으로 이란 수입업체와 거래해 왔다.

하지만 내달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이 중단되면 수출대금을 받을 길도 사라진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에 남아 있는 이란 중앙은행의 잔액은 약 5조원으로 지난해 월간 수출금액 기준으로 약 9개월간 수출을 지속할 수 있는 규모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란과 서방국가 간의 대치가 장기화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내 수출업체들이 입는다”며 “석유 수입보다는 수출 중단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란과 서방국가의 교역이 중단되면서 이란 시장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더 부각됐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란 중앙은행의 잔액이 바닥을 드러내면 수출이 전면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럽 재정위기로 미국 중국 EU 등 3대 시장의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단일 국가로 연간 60억달러에 달하는 시장은 작지 않은 규모다.

○핵협상 지지부진

정부는 최근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원유 수입을 계속 할 수 있도록 국방수권법의 예외를 적용받았다. 하지만 EU가 금수 조치에 이란산 원유 수송 선박에 대한 배상책임보험(P&I)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면서 미국과의 협상 성공은 소용이 없어졌다.

원유 수송 선박에 대한 책임보험은 영국과 이탈리아 등 유럽 재보험사가 전체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일본은 정부가 원유 도입 선박에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지만 우리 정부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원유 수송선 1척당 보증금액이 7000억원에 달해 섣불리 정부가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들은 이달부터 이미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한 상태다. EU의 제재는 7월부터지만 20여일의 운송기간을 거쳐 내달 초 한국에 도착하는 선박부터 보험 제공이 중단됨에 따라 이달 초부터 이란 현지에서 원유 선적을 중단한 것.

정부는 모스크바 협상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있지만 전망은 비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서방과 이란의 협상이 한쪽이 먼저 양보를 하라는 식의 ‘치킨게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양측 모두 자존심이 걸려 있어 단기간 내에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정호/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