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드레스 커미션은 관행이다.” “불법 리베이트로 횡령한거다.”

1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425호실에서는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사진)이 선박발주 때 국내 조선업체들로부터 받았다는 ‘커미션’의 불법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업계 관행이냐 아니면 불법 리베이트냐가 핵심쟁점. 국세청과 검찰은 앞서 국내 조선사들과 선박 건조 계약 과정에서 비용을 과다 산정한 뒤 리베이트를 받는 수법으로 900억원을 챙겼다며 권 회장을 횡령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H중공업 직원을 상대로 권 회장에게 건넨 수수료의 성격을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직원은 “선박가격은 원가에 적정마진과 수수료를 붙여서 정한다”며 “어드레스 커미션은 업계의 관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선주가 커미션을 요구하는 이유를 묻는 검찰 측 질문에는 “용처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권 회장 측 변호인도 “배 발주 시 발생하는 커미션은 배를 발주해서 건조할 때까지 2~3년간 배 건조 과정을 감리하고 관리하는 데 쓴다”며 “브로커를 통해 선박을 발주하는 경우 브로커가 통상 배값의 1%를 커미션으로 챙기지만 시도상선은 선주인 권 회장이 직접 조선소와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수수료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 돈으로 홍콩에서 직원들을 위한 아파트도 샀으며, 필요하면 배 계약금으로도 썼다”고 해명했다. 권 회장 측은 뉴브릿지 에이전시라는 별도 회사를 세워 커미션을 투명하게 관리해 왔다는 주장도 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시도상선의 홍콩법인 CCCS에서 회계를 담당했던 서모씨에게 “뉴브릿지에 입출금된 돈이 사적으로 쓰이지 않았느냐”는 취지로 추궁했다. 하지만 서씨는 “뉴브릿지는 권 회장 개인회사가 아니라 커미션을 받는 그룹의 계열사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권 회장의 착복의혹을 부인했다.

검찰은 CCCS가 권 회장 측이 주장하는 대로 자동차 전용선을 운항하는 실체가 있는 회사가 아니라 탈세를 위해 홍콩에 세운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로 보고 있다. 그래서 검찰은 서씨에게 “권 회장이 2006년과 2007년 CCCS에 며칠간 출근했는지 아느냐”고 따졌지만 서씨는 “홍콩에 권 회장 사무실도 있고 사택도 있는 것은 알지만 정확히 며칠 동안 출근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 어드레스 커미션

조선사가 선박을 발주하는 선주의 요구에 따라 선박건조 대금 가운데 일부를 선주에게 리베이트로 돌려주는 것. 통상 배값 1%를 다시 돌려받는 게 관행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