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북·러 채무협상에서 러시아는 북한이 옛 소련에 진 빚 110억달러(약 13조원) 중 90%를 탕감해 줄 테니 10%를 갚으라고 제안했다. 대신 시베리아횡단철도의 한반도 연결 등 공동프로젝트를 추진하자는 조건을 달았다고 한다. 북한이 빚 갚을 능력이 없어 보이자 대안을 내놨던 것이다. 이달 초에도 러시아 재무차관이 빚 상환을 논의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으나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스웨덴도 북한으로부터 빚을 받지 못해 홍역을 치렀다. 1970년대 북한과 가까이 지내며 볼보승용차와 아틀라스사의 굴삭기를 외상 수출한 게 문제였다. 2005년 무렵 스웨덴이 북한에서 받아야 할 돈은 2억9500만달러(3470억원)에 달했다. 스웨덴 수출신용보증청이 거듭 독촉했으나 북한은 “줄 돈이 없다”는 대답만 내놨다. 동구권 국가들도 액수는 적지만 비슷한 일을 겪었다. 전차와 기계류를 수출했다가 165억원을 떼일 처지에 놓였던 체코는 북한으로부터 빚의 5%를 인삼으로 상환하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북한의 대외 채무는 모두 얼마나 될까. 2008년 당시 권영세 한나라당 의원은 북한의 외채가 180억달러(21조1500억원)로 북한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라고 밝혔다. 2010년 파이낸셜타임스는 120억달러(14조1000억원)로 추산되며, 과거 공산국가들에 집중돼 있다고 전했다. 북한으로선 “배 째라” 말고는 방도가 없을 정도의 거액이다.

북한이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진 빚도 약 3조5000억원이나 된다. 2000~2007년 10년 거치 20년 상환·연리 1%로 지원한 식량차관, 1998~2006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통한 간접 대출, 2007~2008년 섬유·신발·비누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지원 등이다. 이 중 식량차관 첫 상환액 583만달러(약 68억원)를 지난 7일까지 갚아야 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정부를 대신해 한국수출입은행이 조선무역은행 앞으로 팩스를 보내 상환기일과 금액을 통보했지만 아직까지 꿀먹은 벙어리다.

지금으로선 떼일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상환 거부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탓이다. 제때 갚지 않으면 2%의 연체이자를 물린다고 돼 있을 뿐이다. 그래선지 북한은 빚 갚을 생각은 안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며 협박만 해대고 있다. 적반하장이란 말이 무색하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이런 북한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봐야 한다고 우기는 종북세력들이다. 빚 갚을 날이 지났는데도 막말만 해대는 폭력배를 두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