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해제구역 증가로 시공사·조합간 분쟁 확산될 듯
삼성물산은 지난달 말 경기 수원시 세류동 재개발구역 조합에 그동안 빌려준 돈 41억원을 돌려달라고 통보했다. 수원시가 최근 세류113-5구역의 재개발조합 설립 인가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희망하면 재개발·재건축 추진위원회나 조합을 해산할 수 있도록 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 지난 2월 시행된 이후 실제 조합설립 인가가 취소된 것은 이 구역이 처음이다. 이 지역 조합원들은 과반의 동의를 얻어 수원시에 조합설립 인가 취소를 요청했다.
시공사였던 삼성물산은 “그동안 대여한 41억원과 대여금 이자, 손해배상금 등을 토지 등 소유자 전원이 연대변제하라”고 공식 통보했다. 그러나 조합원들 중 상당수는 돈을 갚을 생각이 없어 대여금이 법적 분쟁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매몰비용 분쟁 시작
뉴타운·재개발에서 ‘매몰비용 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매몰비용은 조합이나 추진위가 재개발·재건축 사업추진을 위해 시공사로부터 빌려 쓴 돈을 말한다. 중도에 사업이 중단되면 조합원들이 돈을 돌려줘야 하지만 대부분 조합원들이 돈을 낼 의사나 능력이 없다는 게 문제가 되고 있다.
매몰비용 분쟁은 경기도뿐 아니라 서울 부산 대전 등 전국에서 발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 A건설 관계자는 “2006년 이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서울 세운녹지축 재개발을 매몰비용 분쟁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보고 있다”며 “주민 찬반 투표가 본격화되면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매몰비용 분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들은 특히 지방에서 매몰 비용 분쟁이 집중적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C건설 관계자는 “부산 광주 대전 등의 재개발은 사업성이 없어 사실상 중단돼 있다”며 “임시 방편으로 사업을 최대한 늦추면서 버티고 있지만 매몰비용 분쟁이 여기저기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합원들 수천만원씩 부담해야
조합추진위원회가 설립된 단계에서 사업이 중단되는 곳은 그마나 사정이 낫다. 사업추진이 초기단계여서 건설사로부터 빌려쓴 돈이 10억원을 밑도는 경우가 많아서다. 문제는 조합설립까지 이뤄진 곳들이다. 이런 곳들은 대부분 빌려쓴 돈이 수십억원 수준이다. 조합원 한 사람당 수천만원씩 갚아야 한다. 실제 세류113-5구역의 경우 조합원(178명) 1인당 부담금액이 2000만원을 넘는다.
빌려 쓴 돈인 만큼 법적으로는 당연히 갚아야 하지만 조합원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서울 S구역의 한 조합원은 “도장 한 번 찍어준 것밖에 없는데 왜 수천만원을 내야 하느냐”며 “돈을 내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도 빌려준 돈을 회수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S건설 관계자는 “자기가 직접 지출하지도 않은 돈을 수천만원씩 내놓으라고 하면 누가 반발하지 않겠느냐”며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 재개발지역에 많이 거주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자금을 회수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매몰비용보조에 대한 정부와 서울시의 입장에도 차이가 있다. 서울시는 정부가 조합설립이 된 곳들에 대해서도 매몰비용을 분담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추진위 설립 지역의 해제에는 매몰비용을 지원토록 했지만 조합설립 지역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조성근/정소람 기자 tru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