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등 상가로 활용…투자용 구입도 늘어
지하 파 공간 넓히면 18평도 살기에 '넉넉'
한옥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독특한 취향을 가진 이들의 전유물을 넘어 대중화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한옥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은퇴 무렵의 50~60대 베이비부머는 물론이고 30~40대 젊은층들도 찾는 사례가 많다.
◆한옥의 재발견…“불편함을 즐긴다”
한옥은 일반적으로 불편하다는 것이 최대 단점으로 꼽힌다. 쇼핑시설도 부족하고 자녀 교육에 필요한 입시학원도 찾아볼 수 없다. 주차시설도 마땅치 않다. 그럼에도 한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한옥 거주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마당이 있어서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마당을 통해 하늘을 볼 수 있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때면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 한옥설계시공 전문업체인 북촌HRC의 김장권 소장은 “한옥은 인간을 특정 공간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머물게 하는 매개체로서의 건축물”이라며 “참살이(웰빙) 거주공간으로도 흙과 돌, 나무로 지은 한옥을 당할 건축양식은 없다”고 강조했다.
골목문화가 특징인 한옥 마을의 아이들이 동네 어른들을 대하면서 자연스레 인성교육이 길러진다는 장점을 내세우는 거주자들도 상당수다.
한옥의 불편함을 보완할 수 있는 공법도 다수 등장했다. 부족한 실내공간을 넓히기 위해 지하를 파는 방식이 대표적인 예다. 공부방이나 수납공간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김 소장은 “북촌마을 한옥의 평균치인 18평짜리 한옥에 ‘수직적 팽창’ 방식을 도입, 지하공간을 마련할 경우 전용면적 85㎡ 안팎의 아파트에서 누릴 수 있는 실내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대수익형 한옥도 크게 늘어
북촌, 서촌 한옥마을을 비롯해 누하동, 삼청동, 성북동 등 4대문 안 한옥 밀집지역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기세다. 가격도 비싸 대표적 한옥 밀집촌인 서울 가회동 등 북촌의 경우 3.3㎡당 3000만~40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곳도 수두룩하다. 115㎡(35평) 안팎의 한옥을 장만하려면 1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얘기다. “강남 거주자들이 가볍게 생각하고 상담하러 중개업소에 들렀다가 머리를 긁적이다 돌아간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새로 짓는 금액도 만만치 않다. 땅값을 제외한 건축비만 3.3㎡당 1000만~1500만원이 들어간다. 실력 있는 목수에 의뢰해 짓는 일당이 만만치 않아서다.
투자 목적으로 한옥을 음식점, 갤러리 등으로 바꿔 상가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소품점과 카페 등이 들어선 삼청동이 대표적이다. 오래된 한옥을 외부형태는 유지하면서 내부만 리모델링해 단기여행객을 위한 숙소로 제공하는 게스트하우스로도 인기다. 2인실 기준 하루 숙박료 10만~15만원, 4인 가족을 위한 독채는 40만~60만원 정도로 비교적 높은 수익을 얻고 있다.
가회동의 B부동산 관계자는 “북촌 등의 한옥마을은 골동품처럼 갈수록 희소성이 부각되고 있어 매매가는 물론 임대료가 지속적으로 올라갈 것”이라며 “한옥에 투자하겠다는 부유층의 문의가 점차 늘고 있다”고 전했다.
◆보급형 ‘반값 한옥’ 개발 활발
한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새로 한옥을 지어 분양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서울시는 SH공사를 통해 은평뉴타운 3-2지구 단독주택 부지 약 3만㎡에 122가구의 한옥마을을 조성할 계획이다. 전용 60㎡ 이하에서 200㎡ 이상의 다양한 규모로 공급된다. SH공사는 오는 8월께 3.3㎡당 주거용은 740만원 선, 상업용은 940만원 선에 부지를 매각할 예정이다. 땅을 구입한 후 자체적으로 한옥을 지으면 된다.
성북동 225의103 일대 재개발 사업장인 성북2구역에도 50동가량의 한옥이 들어서 일반에 분양될 예정이다. 이경아 서울시 한옥정책연구팀장은 “소형한옥, 다세대형, 2층 한옥 등 다양한 형태의 보급형 한옥모델 개발에 착수했다”며 “한옥이 들어서면 역사문화관광 상품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옥 대중화 추세에 따라 아파트 시공비의 세 배에 이르는 비싼 건축비를 극복하기 위한 ‘모듈형 한옥’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개발업체인 피데스개발은 경기도 양주에서 3.3㎡당 500만~700만원 선에 지을 수 있는 이른바 ‘반값 한옥’ 보급에 나서고 있다. 이 회사 김승배 사장은 “한옥 대중화는 겨울에도 따뜻하고, 주부가 편리하고, 적정한 가격에 지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보급형 한옥 개발을 위한 다양한 개발 기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료비를 낮추기 위해 목재를 규격화해 기계로 대량 생산하는 ‘프리컷(precut)’으로 짓는 방식도 늘고 있다. 김 소장은 “한옥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 숙제이긴 하지만, 고유의 정체성을 잃는 학사주점식의 싸구려 한옥을 양산할 경우 모처럼 회복된 한옥의 인기가 시들 수도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