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네임 이즈 얼’은 독특한 소재의 드라마다. 주인공 얼은 고약한 짓을 일삼던 좀도둑. 당첨됐던 복권을 교통사고로 잃어버리고 땅을 치던 중 세상 모든 일은 자신의 카르마(업)에서 비롯된다는 방송을 보고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로 작정한다.

훔친 물건 되돌려놓기, 괴롭힌 사람 도와주기 등 목록을 만들어 실천하면서 얼은 착하고 성실한 인물로 바뀐다. 얼의 변화는 가난과 소외로 괴팍해졌던 주변 인물의 심성도 바꿔놓는다. 밑바닥 인생들의 좌충우돌 개과천선기는 고단한 삶에 지쳐 차갑게 굳었던 마음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힐링(healing, 치유)이 대세다. 힐링 캠프, 힐링 연극, 힐링 도서에 힐링 카페까지 생겼다. 힐링이란 가슴 깊이 묻었던 상처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고 용서함으로써 마음과 몸의 아픔을 덜거나 고치는 것을 말한다. 힐링의 첫째 요건이 솔직한 자기 고백인 이유다. 누가 알세라 꼭꼭 숨기던 사실을 제 입으로 말하다 보면 자나깨나 자신을 옥죄고 있던 굴레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는 동시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처럼 자신과 화해하는 모습은 말 못할 아픔에 시달리는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감싸안는다.

SBS의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가 한밤중 방송에도 불구, 10% 가까운 시청률을 보이는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이경규 씨 등이 진행하는 이 프로그램엔 연예인과 정치인들이 출연, 자신의 삶과 상처에 대해 털어놓는다. JYP 대표 박진영 씨는 선배이자 라이벌인 YG 양현석 씨로 인한 울화, 가수 패티김 씨는 자신과 관련된 항간의 루머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했다.

힐링이 뜨는 건 마음이 아리고 헛헛한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3000달러. 2001년(1만631달러)의 두 배 이상으로 늘었는데도 국민의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 국 중 26위, 자살률은 1위다.

영국 경제학자 리처드 레이어드는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으면 소득과 행복의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는 ‘행복의 역설’을 내놨다. 자살률은 원래 소득 1만~2만달러에서 높아지고, 소득에 대한 만족은 ‘사회적 비교’와 ‘습관’에 좌우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행복지수가 형편없는 이유는 힐링 바람이 왜 부는지 알려준다. 주거환경, 소득, 직업 등 11가지 지표 중 다른 건 웬만한데 ‘공동체 생활’(어려울 때 도움 받을 친척 친구 이웃이 있다) 부문은 10점 만점에 0.5점으로 꼴찌였다는 것이다. OECD 평균은 6.6점.

다들 사무치는 외로움에 떨고 있다는 얘기다. 외로움은 분노, 분노는 증오, 증오는 파멸을 부른다. 사회적 힐링이 필요하다는 건데 과연 누가 이들을 달래고 위로할 것인가. 대선 주자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