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가 영국에 가서 받은 잊을 수 없는 대접에 대해 자랑을 했다. 영국 귀족의 초대를 받아 수백년된 고풍스러운 집에서 이름 있는 미술작품을 보면서 식사 대접을 받은 것이었다. 식탁 의자, 그리고 식기 등이 옛날부터 사용하던 것 그대로였다는 점도 감동이었던 모양이다. 집에 서려 있는 역사적 기운과 예술작품들이 어우러진 분위기에서의 식사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거의 10년 전 일을 회상하며 그때의 분위기를 자세히 전하는 것을 보면 상당한 감동이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에게도 그런 기억이 떠오른다. 스페인의 한 성지에서 콘퍼런스 참가자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옛 성곽이 남아 있는 언덕 위의 성에서, 저녁 노을이 무대 조명이 되고 역사적인 성곽이 무대 장식이 된 그곳에서 밤 11시까지 이어진 식사, 이것은 한 끼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한 하나의 퍼포먼스였다. 주변의 모든 것은 퍼포먼스를 위한 오브제였다.

우리는 매일 허겁지겁 세 끼의 식사를 한다. 즐긴다기보다는 먹는 일이다. 해외 관광을 가 봐도, 보고 이동하고 먹고 이동하고 찍고 보고 또 이동하고를 반복하는 것이 여행인 경우가 많다. 많은 곳의 사진을 남기는 것이 목적인 양 그렇게 한다. 한국에 오는 외국관광객들에게도 그런 스케줄로 관광 상품을 구성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콘서트가 주는 즐거움처럼 음식과 장소, 그리고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하나의 작품과 같은 만찬. 이것을 즐기는 많은 외국인에게 우리도 그런 퍼포먼스를 문화상품으로 만들면 멋질 것이다.

얼마 전 안동에 다녀왔다. 몇 년 전 지인의 초청으로 군자마을이라는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400년 된 고택에서 그 정취에 흠뻑 젖어 하루를 보낸 것이 인연이 되어 이번에도 안동을 찾았다. 그리고 그때의 그 향기는 여전히 새롭다. 군자마을에서는 고택을 무대로 하는 뮤지컬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오랜 역사가 서려 있는 고택이나 주변의 모든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정말 멋있고 뜻 깊고 오래 기억에 남을 멋진 문화상품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이다.

5000년 역사의 숨결을 찾아내고 그것을 미래와 함께 춤출 수 있게 만들어내는 일, 그래서 먹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퍼포먼스와 같은 멋진 문화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문화콘텐츠 전문가들의 역할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달동네도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도 그 모습 그대로 예술적 가치로 승화할 수 있는 우리의 시각과 성숙된 문화의식이 아쉽다. 여수엑스포가 얼마 안 남았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문화로 예술로 창조해 총체적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다차원의 서비스가 제공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하진 < 제19대 국회의원 hajin@haj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