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처내 빈라덴 확신 뒤 수백번 가상 훈련

9년 동안의 추적과 8개월에 걸친 분석과 확신, 가능한 작전 계획 검토, 특수요원들의 수백번에 걸친 가상 훈련, 그리고 마지막 결심….
미국 특수부대 요원들이 지난해 5월 2일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에 있는 오사마 빈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해 그를 사살하기까지 미국 행정부와 정보 당국, 군, 대테러 당국 등의 치밀하고도 집요한 과정이 있었다.

작전시간은 15분에 불과했지만 은신처로 의심되는 단서를 잡아 실제 작전을 수행하기까지는 8개월이 넘는 길고도 힘든 시간이 소요됐다.

영국 일요신문 선데이 타임스는 29일(현지시간) 저널리스트인 피터 베르겐이 쓴 `맨헌트(인간사냥):9/11에서 아보타바드까지'의 발간을 앞두고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한 부분을 발췌해 실었다.

이에 따르면 9년동안 빈라덴을 추적해온 미국 정보 당국이 그의 아보타바드 안가에 의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10년 8월.
미 중앙정보국(CIA) 대테러센터에서 고위 관리들이 당시 리언 패네타 국장(현 국방장관)에게 "빈라덴과 오랜 관계를 유지해온 연락책 아부 아흐메드 알 쿠웨이티를 뒤쫓아 그가 요새처럼 보이는 곳으로 돌아갔다"고 보고했다.

이들은 이 은신처에 대해 한쪽 담의 높이는 18피트(약 5.4m)에 이르고, 발코니는 7피트 높이의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고 전했다.

패네타 국장은 은신처로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작전 경로를 파악할 것을 지시한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알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은신처에 빈 라덴이 있는지 없는지 아무런 확신도 없는 상태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관심은 있었지만 신중했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이때부터 일단 은신처에 있는 사람이 빈라덴임을 확신하기 위한 정보 당국의 끈질긴 감시 작전이 가동됐다.

은신처 내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기 위해 하수구를 통해 감시장비를 설치하고 2㎞ 떨어진 산에서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등의 온갖 묘안이 검토됐다.

패네타 국장은 요새 내부의 나무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방안을 내놓았지만 얼마뒤 그 나무는 베어졌다.

CIA는 빈라덴을 추적해온 팀에게 은신처 내부 동향을 알 수 있는 25가지 방안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나온 묘안 중에는 악취를 내는 폭탄을 터뜨려 은신처에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모두 나오게 한다거나 스피커를 통해 한 광신도가 "알라가 당신들을 거리로 나오도록 명령했다"는 방송을 틀어대자는 것도 들어 있었다.

은신처의 위성 접시를 도청하고 빈라덴이 육성 지령을 녹음하는 것을 잡기 위해 은신처 내 모든 소리와 에너지 방출을 파악할 수 있는 안전 가옥을 설치하자는 등의 방안도 나왔다.

연락책의 전화를 도청하고 은신처를 찍은 위성 영상을 분석하는 작업은 기본이었다.

정보 당국은 이러한 정보 자산을 근거로 은신처 내부에 있는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일일이 분석해 매일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채소밭을 산책하는 한 남성을 특정해 냈고 그에게 `천천히 걷는 자(pacer)'라는 별명을 붙였다.

패네타 국장은 2011년 1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동안 수집된 정보를 보고했고 이때부터 동원 가능한 작전에 대한 검토가 시작됐다.

B-2 폭격기를 이용한 대대적인 폭격, 무인기를 이용한 정밀 타격, 특수부대를 이용한 공습 작전 등이 집중 검토됐다.

윌리엄 맥레이븐 특수작전사령관은 은신처를 초토화시키기 위해서는 20여개 또는 2천 파운드 규모의 폭탄을 동원해야 하고 100% 정확성을 자신하기는 힘들다고 보고했다.

은신처는 파키스탄 내륙으로 150마일(240㎞)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공습 작전에 따른 외교적 파장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작업도 동시에 이뤄졌다.

폭격이든 특수작전이든 우방인 파키스탄의 주권을 심각히 침해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자 파키스탄과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은신처 정보를 미리 알려주거나 합동 작전을 하는 방안, 작전 직전에 통보하는 방안, 빈라덴을 처형하기 직전에 알리는 방안 등에 대한 검토가 이뤄졌다.

미국의 아프간에서의 군사작전이 그동안 철저히 파키스탄을 통해 이뤄졌기 때문에 자칫 파키스탄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향후 미국의 대 아프간 작전이 힘들어진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작전을 앞둔 2011년 3월 14일 오바마가 주재한 백안관 회의에서는 폭격의 경우 은신처 내부의 모든 사람을 죽일 수 있고 미군의 피해가 전무하다는 장점이 부각됐다.

그러나 은신처가 1에이커 크기이기 때문에 이를 초토화 시키려면 많은 폭탄이 필요하고 폭격이 성공하더라도 빈라덴의 DNA를 확보하기가 힘들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공습에 성공하더라도 진짜 빈라덴을 잡았는지 불확실하다는 것이었다.

무인기를 이용해 은신처 내를 산책하는 빈라덴을 겨냥해 작은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폭탄을 떨어트리는 방안도 있다.

파키스탄의 반발이 적고 민간인 피해가 최소화되지만 이는 고도의 정밀성이 필요하고 빗나갈 수도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부각됐다.

특수부대원을 이용한 작전은 만일 현장에 빈라덴이 없을 경우 그냥 되돌아오면 되고 작전 자체를 부인하면 그만이라는 장점이 있었다.

결국 맥레이븐 사령관은 특수부대원을 동원한 작전이 필요하다고 보고했고 곧이어 특수부대원들은 3주에 걸쳐 노스 캐롤라이나 비밀 장소에서 은신처와 똑같은 가상 건물을 지은뒤 수백번에 걸친 훈련을 반복했다.

은신처내 무장한 여성이 있거나 잠옷 속에 자폭 조끼를 입고 있을 경우, 건물에 자폭 장치가 돼 있는 경우 등 모든 가능성을 상정한 훈련이 진행됐다.

작전을 앞둔 4월 28일 백악관 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빈라덴이 은신처에 있을 확률은 반반"이라면서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물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파키스탄과의 관계 등을 들어 작전을 중지하자는 입장이었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패네타 국장은 특수 작전을 옹호했다.

모든 의견을 듣고 있던 오바마 대통령은 회의가 끌나갈 무렵 "이제 결론을 내려야 할 때"라면서 "일단 잠을 자고 내일 아침에 결심을 말해주겠다"면서 회의를 끝냈다.

다음날인 4월 29일 오바마는 "맥레이븐 사령관과 특수부대원들이 기상이나 현지 조건 때문에 위험하다는 판단이 서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이번 작전을 강행할 것"이라고 최종 결심을 전했다.

이어 5월2일 자정 직후 빈라덴 은신처에는 미 특수부대원들이 하강했고 15분만에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전을 끝냈다.

특수부대원들이 빈라덴의 시신을 싣고 아프간 카불의 동쪽 잘라라바드로 돌아온뒤 맥레이븐 사령관이 직접 빈라덴의 시신을 확인했다.

현지 영상을 전달받은 백악관 인사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시에 "빈라덴"이라고 외쳤다.

현장에 있던 국가대테러센터 소장인 마이크 레이터는 "안면 인식작업이 필요 없었다.

머리에 구멍이 나 빈라덴이었음을 즉각 알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서울=연합뉴스) ofcour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