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상가 볼테르가 수수께끼를 냈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도 짧은 것, 가장 빠르면서도 느린 것, 사람들이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다가 잃어버리면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 아무리 좋은 것도 사라지게 하는 것…’ 정답은 시간이다. 요약하면 시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으면서 상대적이란 거다. 계절 가운데 유독 짧게 느껴지는 건 봄이다. 그래서 소동파도 ‘봄 밤의 잠깐은 천금(春宵一刻値千金)’이라고 했다.

어느해 계간 ‘시인세계’ 설문조사에서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가 뽑혔다. 감수성 예민한 시인들이라 온 산하에 새순과 꽃이 합창하듯 피어나는 봄속에서 덧없음을 읽었던 것일까. 고향 뒷산에 진달래가 지천이었다는 천양희 시인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라는 구절을 부를 땐 아무렇지도 않다가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따라 울던’이란 대목에선 눈물이 나려 했다고 털어놨다.

김종철은 ‘봄날은 간다’라는 시에서 꽃이 지고 난 나머지 시간도 감당해야 하는 게 삶이란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꽃이 지고 있습니다/ 한 스무 해쯤 꽃 진 자리에/ 그냥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일 마음 같진 않지만/ 깨달음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축복 받은 일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한 순간 깨침에 꽃 피었다/ 가진 것 다 잃어버린/ 저기 저, 발가숭이 봄!/ 쯧쯧’. 선운사 상사화를 보고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 주세요’라는 시를 쓴 이는 김소연이다. ‘꽃이 지고 잎이 난다/ 꽃이 져서 잎이 난다/ 꽃이 져야/ 잎이 난다….’ 그릇을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듯 꽃이 져야 잎이 나고 새 생명이 솟는다는 뜻일 게다.

MB정부 권력의 한 축을 이뤘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단지 인허가과정에서 거액을 챙긴 혐의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거론되고 있다.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도 금품 수수죄로 수감돼 있다. 비리로 얼룩진 권력의 종반을 지켜봐야 하는 게 전두환 정권 이후 벌써 6번째다.

활짝 피었던 꽃들이 어제의 비바람으로 꽤 떨어졌다. 잎의 녹색도 짙어졌다. 봄이 가고 있는 것이다. 조지훈은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고 마음을 추스렸다. 이형기는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고 했다. 덧 없이 가는 게 봄날뿐일까. 때가 되면 권력도 진다. 연말 대권을 향한 레이스도 슬슬 시작되고 있다. 권력을 잡기 전이든, 후든 길이 아닌 곳은 가지 말 일이다. 언젠가는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