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민주시민교육이 없다. 민주시민교육을 간혹 정치교육을 넘어서, 정치교화(political indoctrination), 심지어 정치세뇌와 혼동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판단능력을 함양한다는 점에서 정치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중요하지만, 그것이 그릇된 이념이나 왜곡된 사실을 유포하고, 선동과 모략에 동원된다면 민주시민교육은 변질된다. 그렇게 되면 올바른 시민의식은 실종되고, 사회는 늘 혼란스럽게 된다.

민주시민교육의 왜곡과 실패의 이유로 두 가지만 지적하면, 하나는 참여민주주의를 빌미로 한 대중동원, 선동전략이 민주시민교육의 일환으로 자행된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 영역에서 그럴 듯해 보이는 ‘경제민주화’라는 기치 아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해치려는 시도다.

‘참여’를 강조하는 참여민주주의는 ‘뉴레프트’로 불리는 신판 마르크스주의로서, 직위 개방 및 정보 개방의 경우처럼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거나 사회체제 존속상 불가능한 참여가 종종 강조된다. 예컨대, 좌파 교육감이 선도해 만들어놓은 ‘학생인권조례’는 학교교육에서 학생 참여와 상호감시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폐해를 낳아 교육활동 자체를 힘들게 만든다.

‘진보’라는 말이 그러하듯이 경제민주화 역시 얼핏 듣기에는 매우 좋은 느낌을 주는 말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가를 조금만 더 파헤쳐 보면 이를 주장하는 이들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문제는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급진 좌파나 종북(從北) 세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며칠 전 정운찬 전 총리는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위원장 직을 사임하면서 경제민주화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동반성장의 의지가 없는 현 정부의 실책과 경제민주화 실현을 강조했다. 필자가 보기에 이 두 가지는 모두 사실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실이 아닌 ‘하프 트루스’(half-truth)에 불과할 뿐이다.

현 정부의 실책은 초과이익 공유제나 동반성장에 대한 의지 부족이 아니라, 법치수호 의지 부족에 있다. 또 2008년 광우병 파동,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방식에서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내적으로는 괴담과 유언비어에 상당수 국민들이 속아 넘어가도록 방치했으며, 외적으로는 합법적 군사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 전 위원장의 시각에선 현 정부가 대기업을 옹호하고, 친기업 노선에만 매몰돼 공동체 가치를 외면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헌법 질서 수호 의지가 미흡해 집권 기간 내내 국내 좌파 세력과 북한의 행패에 끌려다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 전 위원장이 강조하는 경제민주화가 마치 자유민주질서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뛰어넘는 것처럼 학교 현장이나 시민단체들의 민주시민교육에서 행해진다. 만약 경제민주화가 경제 영역에서 민주 절차를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는 언어유희에 따른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경제 질서는 헌법이 보장하는 바에 따라야 하고, 동시에 자생적 질서의 맥락에서 존중돼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분배의 원리를 절대 선으로 하여 인위적 분배, 즉 강제적 분배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이는 헌법가치인 사유재산 존중의 정신을 망각하고, 전체주의 사회를 지향하자는 말과 같다.

개인의 재산권 행사가 스스로의 사적 판단에 근거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핵심이다. 예컨대, 동료애나 공동체 가치에 함몰되어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자기가 아는 모든 친구들에게 ‘골고루’ 나눠줘야 한다면 그것을 경제민주화라고 칭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유재산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 질서의 대한민국을 강압적인 전체주의로 만들자는 뜻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념에 좌우될 수 있지만, 통치는 국가안위와 민생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한다. 통치기반이 있어야 정치를 할 수 있다. 통치기반이란 헌법 가치 수호에 있으므로 경제민주화가 자유민주주의 헌법적 질서를 초월하거나 경제민주화를 빌미로 하여 이를 파괴해선 안 된다.

김정래 <부산교대 교육학 교수 duke77@bnue.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