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유럽 자동차의 구조조정 '몸살'
82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제네바모터쇼는 스위스의 자연경관만큼 ‘아름다운 모터쇼’로 유명하다. 프랑크푸르트모터쇼 등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전시차량과 무대의 화려함은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 6일 개막한 제네바모터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지난해 9월 프랑크푸르트모터쇼가 럭셔리 카의 경연장이었다면 제네바모터쇼는 중소형 차량이 주인공이었다. 롤스로이스, 페라리, 마세라티 등도 출품했지만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현지 언론들도 폭스바겐 소형차 ‘up!’, 메르세데스벤츠의 A클래스, 기아차 ‘시드’ 등 중소형차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스위스의 한 자동차전문 기자는 “침체된 유럽 자동차시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 재정위기 여파로 수요가 줄자 업체들은 공급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업체들이 팔릴 만한 실속형 차를 부각시킨 이유다. 현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유럽 자동차시장의 공급과잉 비율은 20%에 이른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회장은 “모든 업체들이 과잉생산 문제를 안고 있다”며 “하지만 누구도 구조조정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파산직전에 내몰렸던 미국의 GM과 크라이슬러가 흑자로 돌아선 데는 2년여 동안 13개 공장을 폐쇄하고 수만명의 직원을 일시 해고한 구조조정 덕분이었다.

같은 기간 유럽업체들은 27개국, 241개 공장 가운데 3곳만 문을 닫았다. 정치권이 보조금 지원 정책을 통해 공장폐쇄를 막았다. 실업이 늘어나면 표(票)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반 호덕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사무국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자동차업체들은 더이상 정부 보조금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공멸의 위기에 처해 있다”며 “EU집행위원회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논의해야 하며 각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럽의 공급과잉은 국내 업계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 업체들이 재고를 털어내기 위해 할인공세에 나서면 현지 생산공장을 둔 현대·기아차는 직접 타격을 받는다.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한국GM 쌍용차 등은 지난해 유럽에 48만대를 수출했다. 이 물량이 줄면 울산· 부평· 평택 공장은 가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공장을 더 짓고,사람을 더 뽑아야 한다”는 국내 금속노조의 주장은 한가해보인다.

장진모 제네바/산업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