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동네 골목 구석엔 잔설이 남아 있고 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벌써 봄타령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도땅에서 배를 타고 더 들어간 남녘의 섬마을엔 벌써 봄이 겨울을 밀어내고 있다.

금요일 자정 동서울터미널에서 거제시 고현까지 가는 심야버스를 탔다. 4시간여를 달려 거제도 고현에 도착했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영남지역 먹거리 중 하나인 돼지국밥으로 빈 속을 채우니 든든하다. 고현에서 거제 남부의 여차행 시내버스를 타고 명사리 저구항에서 오전에 출항하는 매물도행 배에 몸을 실었다.

소매물도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경남 통영군 한산면 매죽리에 속하지만 뱃길로는 거제도 저구항에서 가는 것이 가깝고 볼거리도 많다.(물론 뱃길은 통영항에서도 있다) 본섬인 매물도도 물론 좋지만 부속섬인 소매물도는 작지만 다양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매물도행 배는 40여분을 달려 매물도 본섬에 들렀다 곧바로 소매물도로 향한다. 드디어 소매물도의 작은 선착장에 발을 딛는다.

소매물도는 크라운제과의 과자 광고 촬영지로 널리 알려진 일명 ‘쿠크다스섬’이다. 위태하게 배에서 내려 방파제 바로 앞의 마을을 지나면 두 갈래로 길이 나뉜다. 곧바로 가면 소매물도의 정상에 오른 후 등대섬 쪽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언덕길이다. 왼편의 ‘돌아가는 길’ 이라는 푯말을 따라 가면 지름길에 비해 30~40분쯤 더 걸리지만 손에 닿을 듯한 매물도 본섬의 아름다움과 저 멀리 거제도의 아스라한 풍광들도 마주할 수 있다.

소매물도는 면적 0.5㎢, 해안선 총연장이 3.8㎞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지만 옛날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구하러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을 이끌고 온 서불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서불과차(徐市過此)’라는 글자를 새겨 놓았을 정도로 발길 닿는 어디나 절경이 아닌 곳이 없다. 섬 정상인 망태봉의 해발고도가 157m에 불과하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짙푸른 바다와 다도해 특유의 점점이 뿌려놓은 듯한 작은 섬들의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여행자의 맘속에 자리할 듯하다.

[Leisure&] 여기는 남녘 끝섬…봄이 '살랑살랑~'

○바닷길 열어 손님 맞는 열목개 몽돌길

정상에는 하얀색 작은 건물이 있다. 지난해 10월 개관한 매물도관세역사관이다. 이곳은 1978년 해상 밀수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했다가 1987년 폐쇄한 감시초소 자리에 만든 기념관으로 당시의 장비와 관련 기록, 사무실 모습 등이 재현돼 있다. ‘천불어치 밀수하면 만불수출 허사된다’는 당시의 표어가 얼마나 밀수가 성행했는지 짐작케 한다. 감시초소가 있던 곳인 만큼 이 역사관의 옥상에 오르면 소매물도 주변 해역이 한눈에 들어와 전망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곳을 지나 가파른 경사지대를 내려가니 텔레비전 광고로 눈에 익은 등대섬이 펼쳐진다. 쿠크다스섬은 바로 이 등대섬이다.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에는 자라목처럼 잘록한 길이 있는데 하루 두 차례 간조 때만 이 길을 걸어 등대섬으로 갈 수 있다. 길이 70m의 열목개 몽돌길이다. 가파른 언덕길과 계단을 올라 등대전망대에 서자 푸른 바다 위에 버티고 선 암벽들이 아슬아슬하다.

○해안절벽 따라 걷는 트레킹

소매물도에서 거제로 돌아와 명사해수욕장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일정은 트레킹으로 시작한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해안절벽길을 따라 거제도의 상징적 여행지인 해금강의 도장포마을까지 8㎞가량을 걷노라니 봄내음이 물씬 풍긴다.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는 오가는 차량이 많지 않아 걷기에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해안절벽을 따라 이어진 해금강길 코스는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구비마다 숨이 멎도록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해 지루할 틈마저 없다.

해금강이 있는 도장포마을 오른쪽엔 해식애로 이루어진 빼어난 풍광의 신선바위가 반기고, 왼편으로는 초대형 풍차가 랜드마크 구실을 하는 ‘바람의 언덕’이 여행객을 맞는다. 도로를 중심으로 양쪽의 아름다운 풍광을 돌아보자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바람의 언덕’ 아래 도장포항은 외도로 가는 유람선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겨울에도 봄기운 완연한 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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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포에서 유람선을 타니 해금강을 한 바퀴 유람한 뒤 해상정원이 있는 외도로 향한다. 해금강의 촛대바위와 할매바위 등 기암괴석이 보는 이의 탄성을 절로 나오게 만든다.

해식동굴인 십자소에 이르자 80여명을 태운 배가 동굴 안으로 절묘하게 들어간다.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동굴 벽면을 따라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파도에 기우뚱대는 배가 행여 벽에 부딪칠까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러나 공포와 긴장은 잠시뿐, 동굴은 신기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넋이 나간 여행자들이 질러대는 탄성의 메아리로 가득해진다.

해금강을 뒤로 하고 20여분을 달려 외도에 도착한다. 천혜의 자연이 아름다운 소매물도와 달리 외도는 인공의 미가 감탄사를 자아낸다. 원래 7~8가구의 주민이 살았던 이 섬을 정성 가득한 해상공원으로 만든 이는 1969년부터 이 섬을 가꾸기 시작한 이창호·최호숙 씨 부부다.

외도에는 740여종의 다양한 국내외 수종이 자라고 있는데 전체 나무의 90% 이상이 상록수여서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200여종의 꽃들이 조화를 이뤄 사시사철 화려한 꽃들을 볼 수 있는 것도 외도만의 장점이다. 겨울에도 춥지 않은 날씨 속에 이국적인 나무와 꽃들이 조화를 이뤄 봄기운이 완연하다. 흔히 자연미가 최고라고 하지만 사람의 정성과 노력으로 가꾼 해상공원의 규모와 완벽한 조화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다.


◆여행 팁

서울에서 소매물도에 가려면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거제도 고현으로 간 다음 시내버스를 이용해 명사리 저구항으로 이동해 소매물도행 배를 타면 된다. 저구항에서 소매물도행 배는 하루 4차례(오전 8시30분·11시, 오후 1시30분·3시) 운항한다. 소매물도는 워낙 작아서 등대섬까지는 천천히 다녀와도 3~4시간이면 충분하다. 다만 열목개 몽돌길은 간조 때만 드러나므로 미리 물때를 확인해 두어야 등대섬까지 다녀올 수 있다.

당일 여행이라면 배 출항 및 귀항 시간을 참고해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 1박 이상의 여유로운 일정이라면 소매물도에서 하룻밤을 묵어도 좋겠다. 소매물도행 배는 통영과 거제에서 출발하므로 동양의 나폴리라 불리는 통영이나 볼거리 가득한 거제를 연계해 여행한다면 더욱 알차고 다양한 여행이 될 것이다.

외도행 유람선은 장승포, 구조라, 학동항, 저구항, 도장포 등 거제 각지에서 탈 수 있다. 여행객들은 외도에 내려 해상공원을 관람한 다음 타고 갔던 배를 타고 원래의 출항지로 돌아온다. 외도를 코스대로 둘러보려면 1~2시간은 잡아야 한다.

거제=글·사진/ 황훈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