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데자뷔 정치, 또…
어디서 본 듯하다.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말이다. 선거철만 되면 우리 정치판의 시계추는 어김없이 과거로 향한다. 구태가 되살아나는 일종의 ‘데자뷔(dejavu·이미 본 장면) 정치’ 다.

우선 공천 과정을 보자. 여야는 매번 ‘공천혁명’을 부르짖으며 외부 인사를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영입해 대대적 물갈이에 나섰다. ‘공천쿠데타’, ‘공천학살’이라는 말이 나왔다. 공천심사위원장은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때문인지 우리 정치인의 물갈이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화끈하다. 미국과 영국은 선거에서 현역 의원 교체비율이 20% 안팎이지만 한국은 절반을 넘나든다. 15대(1996년) 137명(45.8%), 16대 112명(40.6%), 17대 188명((63%), 18대 134명(44.8%)이 초선의원이었다.

물갈이는 화끈한데…

새 인물이 대거 수혈됐는데 4년 만에 또 물갈이론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으로 활용하는 탓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새누리당이 새로운 후보자들을 수혈하려는 이유는 ‘정권 심판론’을 희석시키려는 목적이 강하다.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과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 정책적 선명성을 부각시키려는 성격이 짙다.

문제는 대대적 물갈이를 해도 우리 정치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선거 때마다 엄청난 물갈이가 이뤄졌음에도 국회에서 난투극 같은 볼썽사나운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회의장 점거도 여전하다. 급기야 ‘최루탄, 해머국회’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당론에 따른 거수기 정치도 그대로다.

대통령 측근 비리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당이 차별화에 나선 것도 고장난 레코드판 같다. 정권마다 터진 각종 ‘게이트’는 민심을 험악하게 만들었고, 레임덕으로 이어졌다. 선거 승리가 급한 여당은 청와대와 거리두기에 나섰고 결국은 노태우(1992년), 김영삼(1997년), 김대중(2002년), 노무현(2007년) 전 대통령이 모두 탈당 수순을 밟는 결과를 초래했다.

변화의 주인은 유권자

이번에도 대통령 측근들이 잇달아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줄곧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하는 사람에게 레임덕은 없다”고 말했지만, 잇단 측근 비리는 이를 퇴색시키고 있다. 새누리당은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와 선긋기에 나섰다. 총선과 대선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서다.

결과적으로 지나간 총선에서 이뤄진 물갈이는 실패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일까. 후진적 정치 시스템이 바뀌지 않은 탓이다. 후진정치를 그대로 둔 채 사람만 바꾼 것은 위기를 넘기기 위한 ‘대(對)국민 쇼’에 불과했던 것이다.

중요한 건 법을 지키고 정치에 대한 신뢰를 쌓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신인이 들어와도 ‘거수기’ ‘바보’가 되는 풍토 속에선 얼굴만 달리한다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한 초선 의원의 말은 우리 정치의 현실을 대변해준다.

이젠 국민이 나설 때다. 정치권에 더이상 기대할 게 없다면 유권자가 정치 변화의 주인이 돼야 한다. 정책이 아닌 유명세만 믿고 투표하지 않았는지, 무관심과 체념이 앞서지 않았는지, 후보들의 공약을 한 번이라도 비교해봤는지 냉정하게 되새겨 봐야 한다. 무엇이 퍼주기식 정책인지를 눈을 부릅뜨고 가려내야 한다. 책무는 다하지 않고 뒷전에서 ‘갑론을박’해봐야 소용이 없다.

홍영식 정치부 차장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