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수렁에 빠진 '연명치료'
서울에 살고 있는 최모씨(52)는 병원에 누워 계신 어머니 때문에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잔다. 올해 78세인 어머니는 이미 의료진으로부터 뇌사 판정을 받았다.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의료진의 판단이다.

최씨는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어머니를 보다 못해 차라리 치료를 중단해 줄 것을 병원 측에 요청했다. 그러나 “규정상 어쩔 수 없다”며 거절당했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사정으로 하루 10만원씩 들어가는 병원비를 대기가 만만치 않다.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지금처럼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계속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2009년 5월 대법원 판결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연명치료가 중단됐던 ‘김 할머니’ 사건이 발생한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연명치료 중단과 관련된 어떤 가이드라인도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당시 각계 대표로 구성된 협의체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환자 상태 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게 고작이다. 의사 표시가 불가능한 환자가 대리인을 통해 ‘연명치료 중단을 희망한다’고 추정할 수 있는지를 놓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필요성은 의료계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계속하는 것은 해당 환자의 자기결정권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의 생명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에 대해서도 병원들이 연명치료 중단을 꺼리는 이유는 있다. 대법원은 2004년 환자 가족의 강력한 요구로 연명치료를 중단했던 보라매 병원에 대해 살인방조죄를 적용, 유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 이후 병원들은 아무리 환자 가족들이 요청하더라도 연명치료 중단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김 할머니 가족이 치료 중단을 위해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관할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이달 중 새로운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고 연명치료 중단 논의를 본격화할 방침이다. 일반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기 위해 20~30명 규모의 국민토론단도 조직할 계획이다. 이번에는 모쪼록 사회적 합의가 도출돼 최씨와 같은 안타까운 사례가 더이상 나오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이호기 경제부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