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판사들, 성형이라도 하시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인기에 적잖이 놀랐다. 지난 주말 집근처 동네 영화관을 찾았는데 시간대마다 만석이었다. ‘국민배우’라는 안성기 씨는 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역을 마다하지 않았을까. 김 교수는 석궁테러로 대법원에서 4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만기복역 후 작년 1월24일 출소한 인물이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영화는 일방적이었다. 첫 장면부터 라스트신까지 ‘세상 물정에 때묻지 않은 학자’와 ‘추한 몰골의 사법부’를 대비시키며 각본에 짜인 대로의 해석을 강요했다. 고집스럽게 생긴 판사들이 줄줄이 김 교수에게 추궁 당하는 장면에선 관객들이 느꼈을 카타르시스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키득거리며 고소해하는 소리가 관람석을 가득 메웠다. 이들이 영화내용을 사실인 양 그대로 믿으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이 상영 시간 내내 가슴을 졸이게 했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실제 판결문과는 뉘앙스가 100% 다른 ‘짝퉁’이다.

짝퉁 불감증이 부른 '열풍'

작년에 일본 도쿄의 기치조지라는 지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일본을 이해하려면 기치조지의 멘치가스 파는 가게를 꼭 들러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멘치가스는 우리의 고로케와 비슷했다. 맛도 고소하고 육질도 풍부하지만, 기름기가 철철 넘쳐 두 개 이상 먹기는 힘들다. 보통 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데다 구입가능한 수량도 제한돼 있다. 두 시간 기다려 먹는 음식이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 이곳을 찾으면 대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100m나 넘는 장사진 속에서 대기표를 받는 진풍경이 매일 반복되지만, 수십년 됐다는 노포 인근에는 멘치가스를 파는 다른 가게를 찾아보기 힘들다. 진짜(혼모노)나 명품 지향적인 일본 소비자들이 원조 이외 다른 가게는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란다. 원조 할아버지 가게라도 1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느 새 옆집을 기웃거리는 성미 급한 한국인들과는 성향이 좀 다른 것 같다.

한국은 짝퉁에 관대한 편이다. 굳이 진짜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부러진 화살’의 인기는 이런 짝퉁 불감증이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상승작용을 일으킨 결과다. 현실 정치를 풍자한 인터넷라디오방송 ‘나꼼수’ 열풍도 비슷한 구조다. 뇌물 비리와 당파싸움에 찌든 정치판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이 상식을 뒤집고 치부를 까발리는 유사 정치평론에 솔깃해 하는 것이다.

일그러진 사법부 자화상

짝퉁이 민폐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짝퉁이나마 있기에 대리만족이 가능하다. 정치 문외한인 안철수 바람에 기성 정치권이 와해되고 있고, ‘부러진 화살’로 사법부에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짝퉁이 진짜 행세를 해선 곤란하다. 그러잖아도 짝퉁이 범람할 조짐이다. 총선과 대선이라는 대목을 앞두고 있어서다. 선거운동 족쇄가 풀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카더라’식 짝퉁을 얼마나 쏟아낼지 걱정이다.

‘부러진 화살’에 치명타를 입은 사법부가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문성근 씨가 열연한 일그러진 자화상으로는 안 된다. 화장발이 안 먹히면 성형수술이라도 해야 한다. ‘나꼼수’ 인기에 편승했던 ‘가카새키짬뽕 판사’가 대법원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빅엿 판사’가 재임용 적격심사 대상자로 통보됐다. 사법부의 꼼수일까, 아니면 읍참마속인가. 두고 볼 일이다.

김병일 지식사회부 차장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