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시장경제 원칙이 퇴보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한국개발연구원(KDI) 시장경제연구원이 공동 기획해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 결과 이명박 정부가 ‘시장과 기업 프렌들리(friendly)’를 표방했음에도 경제 주체들은 한국사회가 이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MB정부 들어 공정경쟁 약화 · 가격통제 강화

◆뒷걸음치는 시장경제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이상적인 시장경제의 조건은 대략 다음과 같다. 경제 주체들 간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고, 가격은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반영하며, 개인의 소유권은 철저히 보장돼야 한다. 재화와 서비스를 원하는 가격에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고, 정부의 시장개입은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

한국사회는 그러나 최근 5년간 이런 원칙에 다가가기보다는 오히려 뒷걸음질쳤다는 게 이번 조사의 결과다. 설문은 △공정한 경쟁 △시장에 의한 가격결정 △정부규제 △사유재산권 보호 △자유로운 거래 등 5개 항목에 걸쳐 5년 전과 비교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물어봤다. 4를 중간값으로 놓고 상황이 개선됐다고 판단할 경우 그보다 높게, 후퇴했다고 느끼면 그보나 낮게 점수를 매기도록 했다. 최소 1점, 최대 7점까지 주도록 했다.
전국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공정경쟁(3.76점), 가격결정(3.84점), 정부규제(3.98점) 등 3개 항목은 중간값보다 낮았다. 5년 전과 비교해 악화됐다는 것이다.

사유권 보호(4.28점)와 거래의 자유(4.33점) 2개 항목만 조금 나은 평가를 받았다.

◆절대 기준으로도 ‘중간 이하’

5년 전과의 비교와는 별도로 진행된 ‘지금의 시장경제’에 대한 평가 결과도 ‘중간 이하’로 나왔다. 공정 경쟁(3.65점), 가격결정(3.91점), 정부규제(3.59점) 등 주요 평가항목이 중간값인 4를 밑돌았다.

연규융 시장경제연구원 연구실장은 “과거와 비교해 공정경쟁은 약화하는 반면 가격에 대한 통제와 경제활동에 대한 법적 제도적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라는 게 이번 조사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연구진들은 이에 대해 정부 출범 초기 규제완화 및 폐지, 친기업·친시장경제를 강조해오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시장개입 확대로 시장친화적 정책이 급속도로 후퇴하면서 일반인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극명하게 드러난 소득불평등 심화 등 자본주의 문제점으로 인해 반(反)시장주의적 성향이 강화된 것도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만능은 아니며 보완과 개선이 필요하지만 우리사회의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와 지지도가 이처럼 낮게 나온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KDI 관계자는 “최근 들어 시장의 실패를 경계하고 보완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지만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