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투기 광풍이 몰아친 이후 서울은 아수라장이 됐다. 할 수만 있다면 원점으로 되돌려 놓고 싶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30일 ‘뉴타운·정비사업 신정책 구상’ 브리핑에서 “재개발 4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정비사업의 패러다임을 새로 만들겠다”며 이처럼 강조했다. 박 시장은 “정치인들의 뉴타운 공약 남발과 개발이익 위주의 사업으로 원주민이 ‘도시 난민’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덧붙였다. 신정책 구상에는 뉴타운의 골격을 허무는 조치들이 담겼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인 2002년 시작된 뉴타운 정책이 도입 10년 만에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해제 검토 대상 610개 구역

서울에서 도시정비사업이 추진 중인 곳은 뉴타운(305구역), 재개발(529구역), 단독주택 재건축(276구역), 아파트 재건축(190구역) 등 총 1300개 구역이다. 서울시는 사업시행인가를 마쳤거나, 일부 아파트 재건축을 제외한 610곳에 대해 실태조사를 거쳐 해제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610곳 중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317곳은 현장실태를 전수 조사키로 했다. 토지 등 소유자 30% 이상이 요청하면 구역 해제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연내 구역 해제가 유력한 사업장은 창신·숭인뉴타운, 한남1재정비촉진구역, 신길16재정비촉진구역, 망우2주택재건축 정비예정구역, 독산제1주택재건축정비구역 등 5곳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들 구역은 주민들 반대로 추진위를 구성하지 못했거나 구역지정 취소 소송을 진행 중이어서 곧 해제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추진위나 조합이 설립된 나머지 293곳은 주민 10~25%가 동의하면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금호23구역, 성수전략1~4구역, 제기6구역, 청량리6구역, 용두5구역, 삼선6구역, 월곡4구역, 미아 3·11구역 등이 대표적이다. 실태조사 이후 주민 2분의 1이나 3분의 2, 또는 주민 과반수가 동의하면 구역 해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실태조사 결과 연말께 윤곽

구역해제의 첫 단추인 실태조사 범위에는 주변 아파트 시세를 비롯해 사업성, 주민 분담금 추정액, 노후도 기준 등 구역지정 요건, 정비기본계획의 주요 내용 등이 포함된다.

서울시는 추진위나 조합설립 이전 단계의 사업장에 대해선 오는 5월부터 전면 실태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조사 결과는 이르면 연말께 발표된다. 주민들은 실태조사 결과를 놓고 사업을 계속할지, 구역해제를 요청할지 판단하게 된다.

추진위나 조합이 만들어진 사업장은 조례 개정을 통해 주민동의율을 따로 정한 뒤 오는 8월부터 실태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구역이 해제되는 사업장은 골목길과 주민공동체를 보전하는 ‘마을만들기’나 ‘소규모 정비사업’ 등 대안형 정비사업으로 유도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사업시행인가를 마친 재개발 구역이나 사업추진이 상대적으로 원활할 것으로 보이는 아파트 재건축 단지는 행정적으로 지원키로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업을 계속하더라도 추진 단계별로 일정 기간 이내에 다음 단계로 옮겨가지 못하면 일몰제를 적용해 구청장이 구역 취소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투자비용 마련이 관건

서울시가 구역 해제를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지만, 현실화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동안 투입된 비용을 누가 부담하느냐를 놓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서다.

서울시는 추진위 승인 단계인 182개 구역에 대해선 기존 투입비용 중 정비계획 수립비용 등 일정분을 부담하기로 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추진위 승인까지 들어간 비용은 5억~6억원 안팎으로, 이 중 절반가량인 3억원만 서울시가 보전해도 500억원가량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정부가 뉴타운 사업장에도 일정 규모의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조합설립 이후 단계의 사업장은 투입비용에 대한 기준이 없어 주민들이 구역 해제를 원해도 현실화가 어려울 전망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서울시가 투입비용의 일부를 부담해도 조합원들과 시공사가 나머지 금액을 정산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어 구역해제 절차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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