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포인트] 건설업진단, 공적 신뢰가 생명
외형상 멀쩡하던 사람이 진단 결과 종양이 있어도 이를 받아들이고 몸을 내주는 것은 못된 종양을 도려낼 수 있으리라는 진단자에 대한 신뢰와 전문성 때문이다. 정부가 부실한 건설회사를 골라낼 때 건설업진단을 하는 것도 이와 같다.

건설회사는 건설산업기본법에서 정한 건설면허별 등록기준을 상시 충족해야 하며 이중 건설업 실질자본은 기업진단지침에 따라 확인한다. 필자는 현행 진단지침의 개정 작업에 관여했고 건설협회나 지자체 등 관련자에 수시로 규정해석 및 적용방식을 자문하고 있어 기업진단의 역할과 부실진단의 부작용에 익숙하다.

페이퍼컴퍼니나 부실기업은 ‘을’인 세무대리인을 통해 가공의 자산, 부실자산 및 부외부채를 말끔하게 포장해서 멋진 결산서를 만들어 낸다. 이런 재무제표를 가지고 건설회계 비전문가인 건설협회장, 시·도지사 및 시·군·구청장이 옥석을 가리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진단보고서가 제출되면 일부 부실진단을 제외하고는 진단보고서를 믿고 공무를 집행하니 진단의 생명은 공적신뢰에 있다.

1964년 이래 공인회계사 등은 진단업무를 수행하면서 공적신뢰를 축적해왔다. 지난해 말 세무사에게 건설업체 기업진단을 허용하는 건산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세무사는 회계전문가가 아니나 세무대리인으로 세금 신고를 할 때 소규모 건설사의 회계업무를 봐주는 경우가 많다. 이에 국회는 세무사가 만든 결산서를 공인회계사 등 외부의 독립기관에서 진단하는 건 비효율적이니 본인 스스로 싸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진단의 본말이 전도되고 독립성과 공적신뢰는 안중에 없다. 조세 지식은 회계나 진단능력과 무관하게 진단과정 어디에도 쓰임이 없고, 금융위원회가 기업진단을 회계에 관한 감사증명업무로 보아 자신이 만든 결산서는 자신이 진단할 수 없도록 한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부는 지난 반세기 동안 부실 건설업자를 도려내는 데 기업진단을 활용해왔고 최근 수년간 건설업체 실태조사로 공정한 기업진단의 분위기가 강화되는 이때 느닷없는 건산법 개정이 당혹스럽다.

잘못된 법률은 굳기 전에 바꾸는 것이 상책이며, 최소한 ‘을’ 자신이 만들어 독립성이 없거나 전문성이 부족한 부실진단은 원천 봉쇄해야 하므로 이를 위한 후속대책과 엄정한 사후관리를 기대한다.

권용찬 < 공인회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