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보수는 벌써 山行 준비를 한다
자신감이라곤 전혀 없다. 오죽하면 껍데기까지 바꿨겠는가. 새누리당이 요즘 하는 일이 다 그렇다. 시험시간 직전까지도 자신이 없어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수험생, 그 수준이다.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 특별법이 지역민원 해결 차원이라는 것쯤은 이제 동네 아이들도 다 안다. 부산·경남발(發) 메가톤급 공포에 눈이 먼 것이 새누리당이다. 경제를 좀 안다는 당 중진은 자신도 답답한지 원내 의원들이 경제를 몰라서 그렇다며 혀를 찬다. 하지만 정작 혀를 찰 일은 그 무시무시한 소급입법을 표와 바꿔 먹으려는 사람들이 바로 보수를 대변한다는 새누리 의원들이라는 점이다. 한번 무너지기가 어렵다. 재벌을 다시 한번 공공의 적으로 만든 빵집 논란에서, 대기업을 두들겨 군소 상인들의 환심을 사겠다는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과 영세사업자 카드수수료 인하까지 이젠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생각대로 될까. 보수는 제집 닭으로 치고, 스펙트럼을 왼쪽으로 가져가 중도좌파까지 잡아보자는 계산인데 정말 착각이다. 그들이 뭐가 아쉬워 새누리를 찍겠나. 조랑말에 줄 좀 그었다고 얼룩말로 볼 사람도 없다. 게다가 민주통합당의 미끼가 훨씬 맛나 보인다. 그러면 보수만큼은 분명히 새누리를 찍을까. 아니다. 로고의 머리에 빨간물까지 들인 새누리에 미련이 남은 보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은 10년 좌파정권에 염증을 느낀 보수가 결집한 결과다. 2008년 총선으로 완승을 거뒀지만 보수의 희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촛불 탓에 모든 시나리오가 망가졌다는 건 변명일 뿐이다. 실용주의로 포장된 무정견 탓에 시장경제나 법치와 거리가 먼 정책들이 줄을 이었다. 감세는 증세로, 규제 완화는 강화로, 비즈니스 프렌들리는 언프렌들리로 뒤집어졌다. 패거리 정치, 개혁에 대한 거부, 기득권 옹호로 보수를 한껏 욕보여온 것이 지난 4년이다. 결국 좌파 정당과 포퓰리즘 경쟁이나 벌이다가 실패로 몰락하고 있는 정권이 아닌가.

새누리는 그런데도 여전히 실패의 원인을 찾지 못한 것 같다. 그저 유권자들이 보수 진영을 이탈해 진보 쪽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울 뿐이다. 그렇긴 하다. 얼마 전 보건사회연구원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자신이 보수라고 답한 유권자는 19.8%에 불과하다. 2004년 같은 조사 때 28.3%에서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렇다고 보수를 이탈한 계층이 다 진보로 넘어간 것은 아니다. 스스로를 중도라고 답한 유권자가 38.9%에서 51.4%로 급증했을 뿐이다. 다소 의외이지만 진보도 31.7%에서 28.8%로 줄었다. 우파의 상당수가 새누리를 이탈한 것은 맞아도, 보수 성향마저 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좌파로의 변신이 결코 쉬운 일도 아니다.

지난해 서울시 전면 무상급식 찬반투표도 따지고 보면 같은 결과다. 투표함조차 열어보지 못한 25.7%의 투표율이었지만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실패한 새누리나 오세훈 시장을 위해 투표장에 나왔던 사람들이 아니다. 보수의 가치를 확인하러 투표소에 나온 사람들이다. 보수는 살아 있다. 새누리의 실패는 결코 보수의 실패가 아니다. 제대로 된 보수 정책을 한 번도 펴보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새누리는 그런데도 여전히 헤매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선거 이슈화되는 게 무서워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영입을 망설이고 있다. 대통령이 저축은행 피해자 구제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가 압도하겠다는 협박을 스스럼 없이 내뱉고 있다. 더 이상 뭘 기대하겠나.

진보는 아스팔트 위에 있고, 보수는 산에 있다는 얘기가 있다. 길거리로 뛰쳐나와 현실 정치에 목소리를 내는 진보와 달리 보수는 나서길 싫어하고 정치에 소극적이라는 걸 빗댄 말이다. 새누리가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헤맬수록 보수는 더 산으로 간다. 이대로라면 결과가 같을텐데 투표소는 뭐하러 가느냐는 얘기가 벌써 나온다. 4월11일과 12월19일, 북한산과 청계산이 아무래도 미어터질 것 같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