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SNS 수다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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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안 그러고서야 작가·판사·정치인·연출가 할 것 없이 죄다 누가 볼지 모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혼자말 같은 수다를 떨 리 없다. 우리 모두 말하고 싶다. 답답할 땐 더하다. 마음 놓고 욕하고 흉도 보고 싶다. 역성 없이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 속이 풀릴 때도 많다.
하지만 마주 앉아 속을 터놓을 사람은 흔치 않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쳐 놓고라도 남의 말, 그것도 누군가에 대한 비난이나 푸념 혹은 일방적인 주장을 무작정 받아줄 사람은 드물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는 그런 점에서 해방구나 다름없다.
듣든 말든 제 생각과 의견을 마음대로 얘기할 수 있는 까닭이다. 게다가 삽시간에 퍼지고 대꾸에 호응이 이어지는가 하면 만난 적 없는 친구까지 늘어난다. 그러다 보면 후련함을 넘어 으쓱해지는 걸까.
판사가 막말을 일삼고, 공지영이 인순이를 공격해 물의를 빚더니 최근엔 연극 연출자가 자신을 비판한 열성 관객을 ‘크레이지’라고 지칭, 소동을 빚었다. 영국에선 이혼의 30% 이상이 페이스북 탓이요, 페북에 올린 글이나 사진 때문에 해고나 징계를 당하는 일도 늘어난다고 한다.
SNS에 비밀은 없다. 페북이나 트위터 친구는 곧 대중이다. 공개 수다의 역습은 무섭다. 트위터 사용자는 국내에만 500만명이다. 뱉으면 주워담을 수 없고, ‘기억이 안 난다’고 발뺌할 도리도 없다. 신나고 후련한 건 잠깐이요, 책임과 상처는 깊다.
사학자 김성칠은 1950년 ‘새해의 맹세’에서 ‘말로나 글로나 수다 떨지 말고, 남의 잘못이나 학설의 그릇됨을 탓하기보다 제 바른 행동과 깊은 공부로 휩싸고, 사소한 일도 먼 앞날을 헤아리고 인생의 깊은 뜻을 생각해서 말할 것’이라고 적었다.
앞서 1946년 4월엔 가까운 사람과 다툰 날엔 일기도 안 쓰겠다고 했다. ‘뒤끓는 가슴 속을 표현하면 다소 후련해질 수도 있겠지만 한때의 후련함을 위해 우리 생활을 파멸로 이끄는 어리석음을 감행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공개 수다에 재미 들인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아닐 수 없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