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올해부터 역내 상공을 통과하는 국내 항공사는 물론 삼성 등 전용기를 운영하는 국내 5개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 부담금을 물리겠다고 통보해왔다. EU가 자체 환경규제를 역외 기업으로까지 확대하려는 시도라는 관측이 나온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달 31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삼성테크윈 현대자동차 LG전자 SK텔레콤 한화 등 7개 국내 기업에 탄소배출 허용량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보내온 것으로 4일 확인됐다. EU가 중국 미국 등 주요국 반발에도 올해부터 탄소배출권거래제(ETS)를 항공업계로 확대한 데 따른 조치로, EU를 드나드는 전 세계 항공사에 배출허용량이 통보됐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올해 1차적으로 각각 205만 ⑩(이산화탄소)과 78만3000 ⑩의 배출 상한선이 정해졌다.

초과 배출한 탄소량에 대해 1년 단위로 정산하는 방식이며 올해 초과분 배출권을 내년 4월30일까지 구매하라는 게 EU 측 요구다. 2013~2020년에는 허용량이 각각 연 194만 ⑩과 74만5000 ⑩으로 줄어든다.

탄소배출권거래제로 국내 항공업계의 추가 부담은 올해 60억원, 내년 120억원에 이를 것으로 한국교통연구원은 추산하고 있다.

삼성 등 국내 기업은 항공업계를 대상으로 한 탄소배출권거래제를 일반 기업에까지 적용하는 것에 당황해 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그룹 회장과 최고경영자 출장 때 유럽으로 연간 2~3회 제트기를 띄우고 있다. 유럽 지역 운항이 상대적으로 많은 삼성테크윈의 배출량은 올해 25 ⑩, 내년 23 ⑩으로 정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EU 측이 항공사는 물론 탄소배출권거래제에 소극적인 한국 기업에도 상징적인 부담금을 물려 유럽식 환경규제를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화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당장 발생하는 비용도 문제지만 국내 기업들이 EU에서 요구하는 허용량을 표준으로 받아들이는 게 맞는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 탄소배출권거래제(ETS)

Emission Trading Scheme. 국가나 기업별로 탄소배출량을 미리 정해 놓고 허용치보다 남는 분량은 탄소배출권 거래소에서 팔고, 초과분은 사도록 한 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