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에서 잇따른 돌발변수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그리스는 “2차 구제금융을 못 받으면 유로존을 탈퇴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추가 긴축 요구를 받을 것으로 보이자 ‘벼랑 끝 전술’로 선수를 치고 나온 것이다. 재정위기 ‘소방수’ 역할을 해온 유럽중앙은행(ECB)에선 권력 투쟁이 빚어지고 있다. 핵심 요직에서 독일 출신이 전격 배제되면서 향후 정책 방향이 불투명해졌다.

◆"2차 구제금융 못받으면 유로존 탈퇴"…그리스 '벼랑끝 전술'
항의시위 국민 압박용 해석도


그리스 정부가 처음으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가능성을 언급했다.

판테리스 카프시스 그리스 정부 대변인은 3일 “2차 구제금융안이 합의되지 않으면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떠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100억유로의 1차 구제금융을 받았고, 올해부터 1300억유로의 2차 구제금융을 받기로 돼 있다.

지난해 10월 유럽연합(EU) 정상들은 그리스가 더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펴야 2차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리스의 긴축 이행 상황을 점검할 EU와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 소위 트로이카의 대표단은 이달 중순 아테네에 도착할 예정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그리스 정부가 이들 대표단과 협상하기 전에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기 위해 선제공격을 한 것으로 풀이했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발언이 새해 첫주부터 긴축재정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국민들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리스 의사들은 2009년 106억유로였던 정부의 의료 부문 지원액이 올해 70억유로로 감소한 것에 항의해 지난 2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니콜라오스 트라블로스 아테네ALBA경영대학원 학장은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머물길 원한다”며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정부가 긴축 외엔 대안이 없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독일 매파 축출, 수렴청정 거부…ECB 드라기의 '반란'
핵심보직에 첫 非독일인 임명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금리를 결정하는 수석 이코노미스트에 독일이 아닌 벨기에 출신 인사를 임명했다. 이 자리는 1999년 ECB 출범 이후 계속 독일 출신 경제학자나 관리들이 맡아왔다. 드라기의 선택은 ECB에 대한 독일 입김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ECB 내에서 독일 출신 ‘매파’의 반대로 실행이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양적완화에 대한 본격적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 등 주요 외신은 3일 “지난해 ECB의 유로존 국채 매입 결정에 반발해 사임한 독일 출신 위르겐 슈타르크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후임으로 벨기에 출신 경제학자 페트르 프레이트가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당초 이 자리는 외르크 아스무센 전 독일 재무차관이 맡을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프랑스가 이에 반대해 자국 인사를 적극 추천하며 일이 꼬였다. 드라기 총재는 ‘제3국 인사’인 프레이트를 선택, 결과적으로 최대 지분을 가진 독일의 의사에 반하는 결정을 내렸다.

드라기가 독일 출생으로 독일어에 능통한 프레이트를 임명하긴 했지만 ECB 내 독일의 영향력은 약화될 전망이다. 이번 인사로 ECB의 유로존 국채 매입을 적극 반대했던 독일 출신 ‘매파’들만 축출된 데 대해 독일 언론들은 ‘충격적’이란 반응을 내놨다. 집권 우파연정 소속 자유민주당도 유감을 표시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