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장마당세대…SNS세대…
차창 너머로 눈에 띈 북한군 병사들의 어깨에 걸린 소총이 버거워보였다. 소총 위에 꽂은 총검은 햇볕을 받아 번뜩였다. 2003년 2월14일 금강산 육로 시범 관광이 시작된 날, 민간인 답사단을 태운 버스행렬이 분단 50년 만에 군사 분계선을 넘었다. 철책 곳곳에 늘어서 있던 남북한 젊은 초병들의 잔뜩 긴장한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사장이 “이왕 들어온 김에 북한 고성 읍내를 들어가보자”고 했다. 1970년대 시골풍경으로 되돌아간 듯한 거리를 지나 금강산 관광객에게 제공하려는 채소를 키운다는 비닐하우스 단지를 찾았다. 한눈에 봐도 따뜻한 것 같지 않은 체육복을 입은 어린 아이들이 양지 바른 철길 밑에서 뛰놀고 있었다.

그해 10월 육로로 개성을 지나 평양에 갈 기회가 있었다. ‘정주영 체육관’ 개관식 행사였다. 부군을 황망하게 잃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목이 멘 채 축사를 했다. 현대 관계자들은 북측에서 손님들에게 선물한 과자 봉지를 그냥 버리지 말라고 여러 차례 귀엣말을 했다. 노란 봉지에 담겨 있는 과자들은 입맛에 맞지 않았다. 평양시내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과자봉지를 옆구리에 낀 북한 측 참석자들이 어두운 밤거리를 줄지어 걷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한반도 정세가 요동을 치고 있다. 북한은 김정은 3세 승계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고, 중국과 미국 일본 등 한반도 주변 국가들은 현상유지 쪽으로 가닥을 잡은 모양새다. 국내 기업들은 어디로 불지 모를 후폭풍에 비상이 걸려 있다.

북한의 핵 개발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꽉 막혔던 남북한 관계도 새 국면을 앞두고 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고 정몽헌 회장 부인 현정은 회장은 26일 1박2일 일정으로 ‘조문 방북’에 나선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세상은 김정일 조문을 놓고 정치권 못지않게 뜨겁다. “도발의 원흉, 북한 주민에게 잔인했던 철권통치의 장본인을 조문한다는 것은 어이 없는 일”이라는 주장과 “조문외교도 유연하게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엇갈린다. “그렇게 좋다면 조문 가고 싶은 사람들을 모두 보내 버려라”는 극단적 의견들도 눈에 띈다.

9년 전 철길에서 뛰놀던 어린 아이들과 제대한 병사들은 ‘고난의 행군’ ‘강성대국’ 구호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북한의 새로운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을 듯싶다. 1990년 이후 출생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절 극심한 발육장애를 겪은 이른바 ‘장마당 세대’다. 이들은 북한에도 정치·사회적 변혁을 몰고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의 2040 SNS세대는 정치, 사회는 물론 기업 경영 전반에서 변화의 핵으로 등장한 지 오래다. 이들의 결집력과 엉뚱한 여론 형성능력은 파괴적이다. 비정한 거리로 내몰리는 SNS 세대가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영능력을 입증하지 못한 창업 3세대들이 고속 승진하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의사소통 방식이 자유 분방하고 삶의 가치관이 기성세대와는 다른 SNS세대와의 단절은 국가는 물론 기업 경영에도 커다란 위기로 이어진다. 숨 가빴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국가와 기업 전략을 고민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유근석 산업부장 y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