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한 연애' 235만명…'色다른 영화' 전성시대
손예진과 이민기가 주연한 로맨틱코미디 ‘오싹한 연애’가 23일 현재 관객 235만명을 돌파했다. 총제작비 50억원인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160만명. 올 하반기 개봉한 로맨스영화 중 처음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한류스타 장근석과 김하늘을 내세운 로맨틱코미디 ‘너는 펫’(54만명), 신예 스타 송중기와 한예슬이 주연한 ‘티끌모아 로맨스’(42만명), 김주혁과 이시영을 앞세운 ‘커플즈’(36만명) 등은 흥행에 실패했다.

성인을 타깃으로 만든 로맨스물은 참패했다. 김혜선의 과감한 노출로 시선을 끌었던 ‘완벽한 파트너’(9만명), 연하남과 연상 여교수의 파격적인 사랑을 그린 장서희 주연의 ‘사물의 비밀’(8000명) 관객은 거의 바닥 수준이다. 그나마 한효주와 소지섭을 내세운 정통멜로 ‘오직 그대만’(102만명)이 체면치레를 했지만 손익분기점에 이르지는 못했다. 스타 캐스팅이나 섹스 코드만으로는 어림없다는 얘기다.

‘오싹한 연애’는 귀신을 볼 수 있는 특이한 여인과 마술사의 ‘괴상한’ 러브스토리다. 두 남녀의 연애에 귀신이 불쑥불쑥 끼어든다. 공포와 멜로를 넘나드는 퓨전 장르인 셈. 다른 멜로물에서 남녀 주인공이 익숙한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를 날릴 때 특이한 능력과 직업의 손예진과 이민기는 귀신과 맞서 싸웠다. 손예진은 “데뷔 13년 만에 처음 보는 이야기여서 출연하게 됐다”고 말했다.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하반기 흥행작들을 분석해보니 색다른 영화란 공통점을 지녔다”며 “기존 장르를 뒤틀거나 혼합한 변종 장르 또는 새로운 캐릭터나 소재를 내세워 강렬한 정서적 경험을 제공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완득이’(531만명), ‘최종병기 활’(750만명), ‘도가니’(467만명), ‘의뢰인’(239만명), ‘블라인드’(236만명) 등이 그런 작품들이다.

750만명을 동원해 올해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최종병기 활’은 영화 사상 처음으로 활을 소재로 한 액션을 선보였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인들이 조선인들의 목에 밧줄을 걸어 끌고가거나 만주어를 쓰는 모습 등은 스크린에서 처음이었다.

‘완득이’는 문제아와 다문화 가정, 이주 노동자, 장애인 등 소외 계층들을 유쾌하면서도 건강한 시선으로 포착했다. 사회고발 의지를 드러낸 대부분의 영화들이 어두운 관점에서 접근했던 것과 달랐다. 특히 필리핀인을 엄마로 둔 고교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주류 영화에서 처음이다.

‘도가니’는 광주 장애인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모티프로 쓴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와 사회 드라마를 혼합한 이야기는 사실과 픽션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상업영화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장면이었다.

‘의뢰인’은 할리우드에서는 많지만 국내 영화로는 처음 등장한 법정드라마였다. 살인누명을 주장하는 의뢰인과 변호사의 이야기다. ‘블라인드’도 특이하게 시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릴러였다.

심영섭 평론가는 “관객들이 자신보다는 이웃의 이야기에 관심을 드러냈다”며 “경제불황에서 나 자신의 이야기를 극장 안에서 보는 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88만원’ 세대를 그린 ‘티끌모아 로맨스’가 대표적이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전개했지만 젊은층으로부터 외면받았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