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부어라 마셔라…'간 큰 당신' 조심하세요!
당신이 아침에 1시간쯤 걸려 출근했고, 사무실에 도착해 30~40분쯤 20일자 한국경제신문을 읽었다면 그 길지 않은 시간에 우리나라에서 4명 정도 간암이나 간경화 등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통계청의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10년 간암 사망자는 1만1205명, 그밖의 간 질환 사망자는 7000여명으로 총 1만8200여명이었다. 1시간에 2명이 간암이나 간질환으로 사망한 셈이다.

간암을 제외한 간 질환의 경우 사망 원인에서 1997년 5위, 2006년 7위, 2010년에는 8위로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앞으로도 ‘10대 사망원인’에서 빠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간 질환에 의한 사망이 줄어드는 것은 간염 예방접종 확대 등의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간 질환에 의한 사망이 감소한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다. 가정이나 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40~50대 사망률에서 간암은 압도적인 1위다.

가까이는 지난 7월 ‘증권 브로커의 전설’이라 불리던 장희순 씨(51)가 급성 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97년 의료보험연합회가 보험료 납부액을 근거로 산정한, 그 해 ‘가장 많은 월급을 받은 사람’이었다. 당시 그의 평균 월급은 6670만원으로 재벌 총수를 능가해 화제가 됐다. 탁월한 영업능력으로 승승장구했던 그였지만, 간 건강 이상에는 대처하지 못해 안타깝게도 한창 나이에 인생의 시계가 멈췄다.

한화 이글스 송진우 코치의 부인도 올해 급성 간부전증으로 사망했다. 앞서 가수 김현식, 스포츠전문 캐스터 송인득 아나운서도 40대의 나이에 간 질환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명사들의 죽음으로 간암이나 간 질환에 대한 경각심이 생길법 하지만 연말은 예외다.

한광협 신촌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한국인은 서양인들에 비해 간염 바이러스를 많이 갖고 있는데다 폭음, 흡연 등으로 간을 혹사하는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면서 “간은 늘 위기이고 특히 연말은 간을 망가뜨리는 시기”라고 말했다.

연말이 되면서 잦은 술자리 등으로 간에 평소보다 더 많은 부하(負荷)가 걸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폭음과 과로가 겹치는 사회 분위기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주식폭락 등 금융자산 손실, 가계부채 급증 등 경제위기에 따른 스트레스까지 가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경제위기 못지않게 간의 위기(危機)에 처해 있다.


◆스트레스·폭식·흡연 ‘중년의 적’

국내 중견제약사 영업부에서 15년째 일해 온 회사원 김모씨(43)는 지난달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 간 수치를 나타내는 GOT와 GPT가 정상 범위(30~40)를 넘는 80이 나왔다.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건진센터의 권고에 따라 간 초음파검사 등을 받은 결과 간경화로 최종 진단됐다. 그는 영업사원이었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간 건강에 줄곧 신경 써왔기 때문에 간경화 진단은 청천벽력이었다.

김씨는 영업직이란 업무의 특성상 적어도 1주일에 3~4일 술을 마셨지만 워낙 체력이 좋고 B형 간염도 없었다. 하루 한 갑 이상 담배를 피웠고, 이어진 폭식 탓에 최근 2년 새 체중이 10㎏ 이상 늘었다. 올 들어서는 ‘약가인하다, 제약사 구조조정이다’해서 이래저래 술로 중압감을 떨치는 자리가 많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숙취해소제를 입에 달고 살았다. 간이 걱정돼 각종 간장약을 수시로 먹고 부인이 구해온 건강기능식품도 빼놓지 않고 복용했다.

김씨를 진료한 의료진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암으로 가장 많이 사망하는데, 특히 40·50대 중년남성 사망률 1위가 간암”이라며 “김씨의 생활습관을 볼 때 간 질환 고위험군에 속하고, 조금만 늦게 발견했으면 간암으로 바로 진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그동안 건강검진에서 별 이상이 없던 김씨에게 간경화가 갑자기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간경화가 생기면 간 세포가 상당수 죽는다. 이 때문에 간 세포가 파괴되면서 나오는 효소의 양을 측정하는 간 기능 검사에서는 간 수치가 정상 또는 그 아래로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때문에 건강검진에서 ‘면죄부’를 받았다고 평소의 나쁜 생활습관을 계속 유지한다면 느닷없이 간경화나 간암으로 진단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오늘도 부어라 마셔라…'간 큰 당신' 조심하세요!
◆“술과 간염 바이러스를 컨트롤하라”

한국인의 간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요인은 간염 바이러스와 술이다. B형 또는 C형 간염환자는 간암 또는 간경화 발병 위험이 간염이 없는 사람보다 약 7배 더 높다.

술은 간 질환의 직접 원인이다. 백승운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김씨처럼 매일 소주 1~2병씩 마신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간 질환 위험도가 2~3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간에 과다한 알코올이 들어오면 간은 이를 처리하느라 지방을 대사시키지 못해 지방이 간에 끼는 지방간이 생기고, 이것이 오래되면 간 세포가 파괴된다.

흡연도 간 질환의 중요한 요인이다. 지선하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가 몇 년 전 간암 사망자 3807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흡연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간암 발생 위험이 2배 더 높았다.

비만도 간에는 큰 짐이다. 체질량지수(BMI)가 30 이상이면 간암 발병률은 약 3배 더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비만할수록 지방간의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나이도 변수다. 40대에 접어들면 얼굴 피부의 탄력 섬유가 점점 파괴돼 주름이 생기는 것처럼 간도 세포들이 점점 파괴돼 작은 자극에도 염증이 생기고 간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간경화를 일으키기 쉽다.

백 교수는 “간은 최악에 이르기 전에는 통증 등 전조증상이 없다. 통증을 느낄 때는 이미 대부분 망가져버린 경우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묵묵히 있을 때 아끼고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