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웹 2.0시대 '정당 재편'은 필연
어느 정도 인생살이를 해 본 이라면 누구나, 시간은 때로는 봄철 개울처럼 평화롭게 흐르다가 어느덧 장마철 계곡물처럼 격하게 흐른다는 것을 안다. 우리 정당정치는 지난 가을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돌출한 이래로, 거대한 폭풍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안철수 교수의 급부상에서부터 박원순 변호사로의 간결한 단일화, 그리고 서울시장 선거 패배와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해킹 사건을 통해서 드러난 한나라당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소용돌이는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이라는 허약한 구조물들을 모두 휩쓸어 갈 것이다. 통합 이후의 야권 정당은 지금의 민주당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고, 박근혜 전 대표 복귀 이후의 한나라당 역시 지난 4년간의 한나라당과는 매우 판이한 방식으로 움직일 것이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변화를 흔히 ‘정당체제의 재편성(realignment of party system)’이라고 부른다. 1987년 민주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정당들, 좀 더 가까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자리 잡은 보수·진보정당의 구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는 중이라고 보는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나 시민단체들의 급격한 부상은 이런 재편성을 촉진하는 촉매제인 셈이다.

필자는 이런 진단에 동의하면서도, 정당 재편성 현상의 기저에 흐르는 저류(低流)의 구조에 더 관심이 간다. 요즘 정당 위기와 혼란의 밑바닥에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이 있다. 하나는 1920~1930년대 이후 최대의 혼란기를 맞고 있는 시장경제의 위기와 그에 따른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환멸이다. 다른 하나는 15세기 중반 종교개혁을 가능케 했던 구텐베르크의 활자혁명에 버금가는 웹2.0 혁명과 그에 따른 새로운 인간형의 등장이다.

2008년 리먼 사태 이후의 경제위기를 흔히 1920~1930년대의 대공황에 비유하곤 하지만, 정작 문제의 핵심은 우리 정부나 정치 리더들이, 이 위기의 실체를 일반인의 언어로 진솔하게 전달한 적은 거의 없다는 것이 우리 정치가 안고 있는 위기의 본질이다. 위기를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성공담만 난무할 뿐이다. 진정 용기 있는 정치 리더라면, 오늘날 고삐 풀린 글로벌 투기자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개별 정부들이 갖는 한계가 얼마나 큰지, 또한 미국 리더십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제공조가 얼마나 부실한지, 엄혹한 국제환경 속에서 국내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재정, 복지정책이 갖는 리스크가 어떤지를 설명하는 정치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편, 구텐베르크의 활자혁명이 중세 기독교 세계를 무너뜨린 종교개혁의 불길을 댕겼듯이, 오늘날 웹2.0 혁명은 지난 100여 년간 진화해온 대의제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대의제의 특성이던 결정권의 위임, 그에 따른 대표자와 시민 간의 충성스런 계약의 정치 등은 웹2.0 세계의 작동방식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웹상에서 방대한 정보를 얻고 있는 웹2.0 사용자들은 정치인뿐 아니라 어느 누구와도 수평적인 네트워크 관계를 원한다. 이미 아마추어와 전문가의 구분은 조용히 사라졌다. 엄숙하고 권위를 갖춘 정치인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울고웃는 ‘페북(facebook)의 친구들’ 또는 트위터리안들만이 시민과 어울릴 수 있게 됐다.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오늘날 마주하고 있는 과제는 단지 내년의 양대 선거를 앞둔 일시적인 치장과 변화가 아니다. 오늘의 심대한 위기를 꿰뚫어보는 역사적 안목과 이를 평이하게 설명해내는 소통력, 용기만이 정당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2000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진입해 있는 웹2.0의 메트릭스를 체화하는 근본 혁신 없이는, 정당정치의 위기는 계속될 것이다.

장 훈 < 중앙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