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 유승민·원희룡·남경필 최고위원이 ‘디도스 사태’를 계기로 홍준표 대표의 사퇴와 당 쇄신을 요구하며 전격 사퇴했다. 홍 대표는 즉각 사퇴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홍 대표 체제의 붕괴는 사실상 불가피하다. 단순히 지도 체제의 와해만은 아니어서 많은 국민들은 한나라당의 붕괴로 이번 사태를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앞으로의 진로를 놓고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 것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의 괴멸은 충분히 예견돼왔다. 이념과 원칙을 버렸고 오렌지들과 기회주의자들의 본질이 드러났으니 정당으로서의 수명은 다했다. 보수의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포퓰리즘과 감세 철회 등 기회주의적 정책에 몰입했으니 이념적으로는 민주당의 복제품이 되고 말았다. 온통 법조 출신들로만 채워진 인적 구성도 국민의 선택을 요구할 만한 처지는 아닌 것 같다. 검·판사 출신들이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중에게 뇌물을 주고 아부하는 정당이 되고 말았다. 소통은 없고 위선만 벌거벗은 채 드러났다. 국가의 보편적 이익은 사라지고 오로지 초라한 권력욕만 남아있을 뿐인 그런 정당은 이미 정당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민주당의 형세도 다를 것이 없다. 반FTA 같은 터무니없는 구호와 극단적 반대와 폭력과 길거리 정치로 겨우 구심점을 유지할 뿐이어서 역시 정상적인 정책 정당이 아니다. 지금 국민들은 대한민국 정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 하는 탄식을 하게 된다. 일부 의원들은 한나라당 집터에 새 집을 짓겠다는 재창당론을 요구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도 재창당을 직접 언급했다.

그러나 무엇을 재창당이라고 부르는지 철학부터가 없다. 재창당 과정에서 벌어질 투쟁이나 조기 대권 경쟁으로 인한 정치의 혼탁만이 문제인 것도 아니다. 국가가 나아갈 이념과 원칙이 없이 당명과 지도체제를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개혁 대상이 제 발 저린다는 식으로 먼저 개혁을 부르짖는 형세로는 판세를 바꿀 수 없다. 떠나간 민심이 돌아오지도 않는다. 재창당을 말하기 전에 먼저 철저하게 무너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