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역사에서 여성은 꽤 일찍 등장했다. 고틀립 다임러가 1886년 3륜 가솔린 차를 만들었을 때 시험 주행의 동승자가 부인이었고, 지금은 사라진 미국 패커드자동차의 창업자 제임스 패커드가 히터를 만들게 된 것도 주행 중 차가 고장 나 추위에 떠는 아내를 위해서였다. 레이서였던 레이 하룬은 부인의 화장용 손거울을 보고 경주용차에 룸미러를 달았다.

그러던 중 19세기 말 전기차의 등장은 여성을 동승자에서 운전자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됐다. 1910년대까지 런던이나 파리, 뉴욕 거리에서 심심찮게 여성이 전기차를 운전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한다. 자동차 연료로 전기 대신 석유가 사용되면서 시동 걸기의 어려움 때문에 잠시 주춤했지만 남성들은 여성을 위해 키를 돌리면 시동이 걸리는 스타터를 만들었다. 덕분에 1920년대와 30년대를 거치면서 여성 운전자가 꾸준히 증가했고, 여성을 위한 기술 개발은 속도를 더했다.

여성이 자동차산업의 중요한 역할자로 등장하자 포드와 GM은 여성 취향을 수용하기 위해 여성 디자이너의 적극 채용에 나섰고, 급기야 볼보는 개발진을 여성으로만 구성, 여성만을 위한 전용 컨셉트카 ‘YCC’를 내놓기도 했다.

물론 여성을 위한 자동차회사의 구애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브레이크 밟는 힘을 줄여주기 위해 브레이크보조시스템(BAS)을 만들었고, 하이힐 수납함과 쇼핑걸이는 기본으로 탑재되고 있다.

요즘 사회에서 여성의 힘은 절대적이다. 자동차도 신차 계약자는 남성이 많지만 차종 결정권은 여성이 쥐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여성이 거부하면 제아무리 권위적인 남성이라도 특정 차종 구입이 꺼려지게 마련이다. 여성을 쫓는 남성의 본능을 포기할 수 없어서다.

며칠 전 기아차의 CUV 경차 ‘레이’가 등장했다. 그런데 재미나는 판촉 문구를 발견했다. 3세 이하 자녀가 있거나 임신부이면 유아용 보조의자를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자동차회사가 여성을 넘어 이제 모성애까지 파고드는 격이다. 모성(母性)은 아들로 대변되는 남성을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렇게 본다면 세상을 지배하는 성(性)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임이 분명해진다. 움직이는 기계에 감성을 넣으려는 노력도 결국은 여성을 잡기 위한 생존 방법이다. 자동차가 남성을 위한 전유물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여성을 향한 손짓이 거부당하는 순간 기계를 만드는 남성은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 비약으로 들리겠지만 자칫 실직자로 추락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지구의 절반 이상인 여성에게 잘 보여야 자동차회사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권용주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