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자다 2011] 스펙 아닌 실력으로 뽑는 채용문화 전파
“기자 채용까지 흥행 방식으로 하나.” “진짜로 스펙을 안 볼까?”

한경미디어그룹이 수습기자 채용 서바이벌인 ‘나는 기자다 2011’을 지난 8월 말 처음 공고했을 때만 해도 언론고시 준비생들의 반응은 9 대 1 정도로 부정적이었다. 취업이 절실한 대학(졸업)생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란 의견부터 식상해진 TV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답습한다는 비난도 나왔다. 심지어 기자협회보는 ‘한경 기자채용 서바이벌, 혁신인가 상업성인가’라는 타이틀로 비판하기도 했다.

‘나는 기자다’는 이렇게 출발했다. 언론계 첫 시도여서 참고할 대상도 없었고, 회사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과연 스펙을 전혀 안 보고 기자다운 기자를 뽑을 수 있을까.

◆“진짜 스펙을 안 볼까”

추석연휴 직후인 9월14일부터 예선 접수를 시작했다. 스펙을 진짜 안 보겠느냐는 의심은 곧 사라졌다. 온라인 지원 양식에는 학점, 외국어 점수, 가족관계 등을 쓰는 난을 아예 두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예상보다 많은 382명이 지원했다. 이 중 10%는 이른바 SKY 출신이었다.

본선 진출자 50명을 추려냈다. 소위 비명문대, 지방대, 전문대 출신도 대거 본선에 올랐다. 언론고시 준비생들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자협회보도 ‘스펙과 상관없이 실력으로’라는 제목으로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한 준비생은 “보통의 (언론사) 공채도 다 서바이벌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공정하게 보겠다고 하고 오히려 서류 장벽을 없애준다는 점에선 좋다고 본다. 예능화시켜 방송할 것도 아니고…”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세 차례 본선 경연의 주제는 보편적인 관심사인 ‘대학’ ‘외국인’ ‘직업’으로 잡았다. 평가는 독자 추천, 한경기자 추천, 논설위 평가를 3분의 1씩 반영했다. 본선 경연마다 10명씩 탈락시켰다. 살아남은 20명이 결선에 들어갔다.

◆SKY 아닌 4명의 합격자

결선은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던 지난 18일 한국경제신문에서 열렸다. 과제는 통계청의 고용, 사회, 여성 등에 관한 통계자료를 주고 이를 토대로 현장취재를 통해 기사 및 동영상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주어진 취재시간이 6시간에 불과했고, 자료 해석도 녹록지 않아 어려움을 호소하는 참가자들이 많았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워 막판까지 경합이 치열했다. 논설·전문위원들이 1주일간 종합평가와 본선 성적을 토대로 채용 대상자 4명을 확정했다. 그 주인공은 김인선(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졸), 박상익(국민대 정치외교학과 졸), 윤희은(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졸), 이진우 씨(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졸)다.

SKY는 한 명도 없었고 세칭 명문대 출신도 아니었다. 글쟁이들과 영상 만드는 재주꾼을 뽑은 것이다. 이들의 학점, 외국어 성적 등의 스펙은 전혀 없이, 부모 직업은 더더욱 모른 채 선발했다. 박상익 씨는 “기사 쓰는 데 흥미가 많았지만 스펙 탓에 이 방식이 아니었으면 기자가 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인선 씨는 “주위에선 지원자들을 이용하려 한다는 불신도 있었지만 기자로서의 가능성만을 평가하기에 많이 배웠고 누구나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펙 없는 채용의 계기돼야

‘나는 기자다’의 두 달여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스펙 아닌 실력으로 인재를 채용하는 관행을 확산시키는 작업은 이제부터다. 최종 선발된 4명에게 합격을 통보하면서 그들에게 막중한 책임도 일깨워줬 다. “스펙 없는 인재 채용은 여러분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모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들 4명이 취재현장에서 보여줄 활약상에 독자들도 깊은 관심을 보여주기 바란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