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식별 위한 제도가 43년간 존속…번호 자체에 개인 고유정보 다 담겨
주민등록번호는 과거 남북 대치 상황에서 간첩을 구별해낼 목적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1968년 1월21일 북한 특수부대 요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한 이른바 ‘김신조 사건’이 발단이었다. 정부는 사건이 일어나자 5월 주민등록법을 개정하고 11월21일부터 전 국민에게 식별번호를 부여했다. 당시의 주민등록번호는 총 12자리였다. 지금과 달리 생년월일은 적혀 있지 않았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주민번호는 110101-100001이었다.

◆간단한 산수로 만들어진 번호

주민등록번호가 현재 13자리 체계로 바뀐 것은 1975년부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김대영 당시 수석연구원이 미국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 체계를 참고해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앞부분 6자리는 년월일을 의미한다. 뒤의 7자리 가운데 첫 번째 숫자는 남자(1, 3)나 여자(2, 4)를 뜻한다. 두 번째부터 다섯 번째까지 4자리 숫자는 주민등록증을 발행한 기관의 시·도·군·구 등을 가리킨다. 여섯 번째 숫자는 당일 해당 지역에서 출생신고를 받을 때 번호를 부여하는 순서다.

한국 주민등록번호 시스템의 핵심은 13자리 중 맨 끝자리다. 이 숫자만이 해당 번호가 주민등록번호 생성 원칙에 대한 위배 여부를 판별하는 기준이다. 그런데 이 기준이라는 게 간단한 산수만 알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우선 첫 번째 숫자부터 열두 번째 숫자까지 앞에서부터 각각의 숫자에 2,3,4,5,6,7,8,9,2,3,4,5를 차례로 곱한다. 이어 이 숫자들을 모두 더해 11로 나눠 나머지를 구한다. 그렇게 나온 숫자를 11에서 다시 빼면 맨 끝자리 숫자가 된다.

물론 지금은 번호와 이름을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변경됐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런 방식으로 고유번호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주민등록번호의 커다란 취약점 중 하나로 꼽힌다. 주민등록번호는 원래 개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처럼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있고 그 원리를 누구나 알 수 있다면 더 이상 신분 확인 용도의 의미는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호·관리 책임은 개인?

주민등록번호 시스템의 문제점은 관리체제에도 있다. 주민등록번호는 국가가 발급하고 개인이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돼 있다. 그런데 주민등록번호 인증 및 수집, 보관에 이르는 중간 관리는 민간 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개인은 스스로 주민등록번호를 지키고 보호해야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생활의 모든 곳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그것을 거부하면 어떤 금융거래나 회원 가입, 계약 체결 등도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를 총괄하는 기관은 행정안전부지만 민간 기업들도 모두 가입자 정보를 갖고 있다. 웹사이트에 가입할 때 실명 인증을 해야 하는데 실명 인증을 대행하는 신용회사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데이터를 사들인다. 사기업의 영역으로 주민등록번호가 넘어가면서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현행 주민등록번호 제도의 부작용이 갈수록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대 교수는 “개인의 일상생활에 ‘비밀 열쇠’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주민등록번호가 너무나 쉽게 외부에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네이트에 이은 메이플스토리에 대한 대규모 해킹 사건은 앞으로 더 큰 문제가 터지기 전에 주민등록번호 관리 체제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