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카드론 피싱 피해자들의 울분
며칠 전부터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건물에서 여의도역에 이르는 200여m의 인도는 외환은행 노조원들이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다. 점심시간마다 나타나 "(금융위원회는) 론스타가 보유한 외환은행 지분에 대해 징벌적인 강제 매각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외친다.

그런데 15일엔 이들 이외에 20여명이 다른 이유로 이 곳을 찾았다. 신종 보이스 피싱(전화금융사기)인 '카드론 피싱'의 피해자들이다. 이들은 절박한 심정을 담은 진정서를 이날 금감원에 제출했다. 한 피해자는 "카드론 대출을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신청가능 금액을 늘려주고,본인확인 절차엔 크게 신경쓰지 않은 신용카드회사에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카드론 피싱은 신종 사기수법이다. 사기범들은 주로 수사기관을 사칭해 "개인정보가 노출돼 수사 중"이라며 접근한다. 또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속여 피해자의 신용카드번호와 비밀번호,유효성 코드(CVC) 등을 요구한다.

범인들은 확보한 개인정보로 카드사에 카드론을 신청하고,돈이 피해자의 계좌에 입금되면 다시 전화를 걸어 "범죄자금이 입금된 것이니 공범으로 몰리고 싶지 않으면 돈을 보내라"고 겁을 줘 가로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믿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범인들이 홈페이지를 알려줬다"며 "검찰청 홈페이지와 거의 똑같은 화면이 나와 '신고센터'로 분류된 란에 개인정보를 입력해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아닌 누구라도 속았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피해 사례가 급증하는데도 카드사들은 "본인 부주의로 카드정보를 범인에게 알려줘 피해를 자초한 만큼 정상적인 신청인 줄 알고 돈을 빌려준 카드사에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렸다. 금융당국도 "사연은 안타깝지만 약관,판례,과거 조정사례 등을 감안하면 도움을 주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은 지난달 말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카드론을 승인할 때 승인번호를 문자로 보내 본인확인 절차를 강화하라고 카드사들을 지도했지만,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카드사들의 무분별한 카드론 대출경쟁과 미흡한 본인확인 절차,금융당국의 뒤늦은 대응 등이 겹치면서 선량한 시민들이 범죄의 대상으로 내몰리고 있다. 카드사에 특별검사를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류시훈 경제부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