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는 정부 지원받고 오바마는 기부금 챙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 월가의 금융회사들을 `살찐 고양이들'이라고 비난하며 이들의 탐욕에 대한 비난 여론을 선거운동에 이용해왔다.

반대로 월가의 금융권은 `도드-프랭크법'과 `볼커 룰'로 대변되는 금융규제 때문에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오바마 정부의 규제강화 움직임을 비난해왔다.

겉보기에 서로 앙숙 같아 보이는 양측은 그러나 내막을 알고 보면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공생관계다.

월가 금융회사들은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등 각종 지원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난 뒤 사상 최대의 수익을 구가하고 있으며, 반대로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의 두둑한 정치자금 기부 덕분에 재선을 위한 실탄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7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월가에서 자산규모 1천억달러 이상의 대형 금융회사들은 지난 2008년 말 이후 자산규모가 10% 늘어났다.

이들은 규모가 커서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낮은 조달금리에 자금을 융통,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익성은 더욱 호전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웰스파고를 포함한 대형은행들은 올 상반기 순이익이 340억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반기 실적으로는 과거 어느 해보다도 많은 것이고 금융권이 활황세를 보였던 2007년 한 해 전체의 수익과 맞먹는 수준이다.

증권회사들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2년 반 동안 830억달러의 수익을 냈는데 이는 부시 행정부 8년간 벌어들인 770억 달러보다 많은 액수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작년 208억달러를 보너스로 지급했으며 월가의 지난해 평균 급여는 전년대비 16.1% 늘어난 36만1천330달러로 여타 민간부문 근로자의 5배를 넘었다.

이런 월가의 활황은 금융위기 직후 금융회사의 도산을 막기 위해 미 정부가 제공한 구제금융자금은 물론,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와 저금리 대출 등의 지원을 받은 덕분이다.

월가는 그동안 미 정치권이 추진해온 금융규제 강화가 금융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엄살을 부려왔지만, 속으로는 서민에 대한 대출은 외면한 채 각종 혜택과 지원을 받으며 막대한 수익만 내고 있는 셈이다.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도 금융권과의 이런 대치국면이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월가의 막대한 보너스 지급 관행을 `탐욕'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를 선거운동에 이용해 지지율 상승을 꾀할 수 있었고, 월가의 수익이 늘어날수록 내년 재선을 위한 정치자금도 많이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전국위원회(DNC)가 금융회사 임직원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은 1천560만달러로 공화당 모든 후보가 받은 것보다 많다.

미국 `부실자산구제계획(TARP)'의 특별 조사관이었던 닐 바로프스키는 "엄청난 규모의 구제금융 자금이 실물경제는 외면한 채 월가 대형 금융회사를 구제하는데만 집중됐었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면서 "이는 실제로 벌어졌던 일을 매우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