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조금만 들여다보면 '중소기업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이 득보다 실이 많다는 걸 알텐데,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타협입니다. "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31일 오후 황우여 한나라당,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전날 밤 회동에서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국회 처리를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지자 "국내 중소기업이 아니라 법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 대기업들만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는 글로벌 개방 경제체제에서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데 도움이 안되고,산업환경 변화로 고유업종 선정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2006년 폐지됐다"며 "다시 적합업종 특별법을 만들어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야합'일 뿐"이라고 말했다.

여 · 야 · 정은 전날 특별법을 만들어 동반성장위원회에 중기 적합업종 선정과 사후 관리에 사실상 전권을 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산업계가 특별법 제정 움직임에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정치권에선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에 제동을 걸 수 있다고 주장하겠지만,현실적으론 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해외 대기업만 이득을 보기 십상이라는 게 첫 번째다.

동반성장위가 대 · 중소기업 자율 합의 방식으로 적합업종 선정을 검토 중인 LED(발광다이오드) 조명만 해도 앞으로 특별법을 통해 삼성 LG 포스코 등 대기업 진출이 원천 차단되면 오스람,필립스 등 해외 대기업들이 뛰어난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싹쓸이할 가능성이 높다고 산업계는 보고 있다.

데스크톱PC 디지털도어록 내비게이션 등 중소기업조합들이 적합업종 선정을 요청한 다른 분야들도 글로벌 기업들에 잠식될 개연성이 크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두 번째 이유는 특별법 제정으로 대기업이 사업을 접게 될 때 고용 불안 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특별법으로 대기업 사업의 중소기업 이양을 강제할텐데 고용승계 등을 놓고 엄청난 노사갈등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이 사업을 포기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일부 중소기업을 제외한 대다수 중소기업은 고사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기업들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중소기업으로부터 제품을 공급받는 방식으로 사업에 진출한 사례가 많다.

동반성장 정책을 민간 자율이 아닌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어긋난다는 게 세 번째 반대 이유다. 전경련과 대한상의는 "동반성장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자율적 민간합의 방식의 동반성장 정책을 제대로 시행해 보지도 않고 폐해가 많아 폐지된 제도인 고유업종제도를 부활시켜 법제화,강제 규정화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 ·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은 동반성장위원회의 민간합의 방식으로 앞으로 2년간 추진한 후 민간 차원에서 제도개선을 검토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중소기업들의 의견은 엇갈리는 분위기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동반성장위의 권한이 약해 지금도 적합업종 선정이 마찰만 빚고 있다"며 "자율적으로 하게 되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적합한 사업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두부 LED 내비게이션 등의 업종에서 대기업과 직접 경쟁하는 기업들은 긍정적 평가를 내놓는 반면 OEM 관계인 소규모 기업들은 고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전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