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금융자본 탐욕이 '부메랑'으로…세계화마저 '흔들'
월가 금융자본 탐욕이 '부메랑'으로…세계화마저 '흔들'
애플의 아이패드 가격은 499달러부터 시작한다. 16기가 바이트 용량에 와이파이 기능만 있는 제품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아이서플라이가 분석한 이 제품의 원가는 229달러였다.

아이패드 뒷면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쓰여 있다.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대부분 제품을 중국 칭다오 등에 있는 폭스콘 공장에서 위탁 생산한다. 폭스콘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기본급)은 2000위안(36만원) 정도다. 1년에 439만원 선이다. 잔업 수당 등을 감안하더라도 연간 500만~600만원 수준이다.

아이패드를 미국에서 생산했다면 어떨까. 미국인들의 평균 임금은 4만달러 선이다. 생산직 평균 임금도 3만달러(3500만원)에 육박한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아이패드를 미국에서 만들면 가격이 적어도 두 배로 뛸 것으로 보고 있다.

◆위험에 빠진 신자유주의

"월가를 점령하라"는 미국 청년 시위대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자본주의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점차 옮겨붙고 있다. 이들의 피켓은 월가 금융인들의 끝없는 탐욕뿐만 아니라 빈부격차와 실업 등 자본주의의 온갖 고통을 호소한다. '리스크(위험)를 극복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있던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는 많은 연봉을 챙기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뿐만 아니라 '세계화'와 '규제 완화' '작은 정부'를 골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마저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진보 진영의 이론가로 꼽히는 언어학자 놈 촘스키는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에서 "시장주의가 경제위기를 넘어 인류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계화와 함께 소득분배 격차가 커지는 양극화가 진행돼 왔다"며 "이것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밑에서부터 불만이 폭발했다"며 "참을성이 말라가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세계화는 선택폭 넓히는 시장 통합

세계화의 근간은 시장 통합이다. 상품과 자본뿐만 아니라 노동이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정부의 역할을 줄여야 한다. 기업들은 아이디어와 설계기술,생산시설을 전 세계에서 마음대로 조달할 수 있다. 애플이야말로 선진국의 창의적인 기획력,한국과 같은 제조 강국의 부품제조 기술,중국의 열악한 노동임금을 적절히 조합한 대표적인 사례다.

시장이 통합되면 소비자들의 선택폭은 넓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제품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무수히 뒤지고,새벽에 벌어지는 제품설명회를 본다. 2등은 물론 3,4등 제품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선택하려는 소비자들의 행동은 만족을 극대화하는 올바른 선택이지만,시장에서는 무수히 많은 기업들이 외면당하고 1등 기업이 결국 독식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1% 대 99%'의 문제는 소비자의 냉정한 선택 결과물이다. 세계 최고의 휴대폰 메이커인 노키아와 첨단 제품으로 한때 각광받았던 모토로라조차 경영위기에 빠지거나 팔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월가를 점령한 시위대가 쓰고 있는 IT 기기들도 대부분 신흥국의 저임금 생산력과 결합한 제품들이다. 세계화의 진전이 세계화를 위기에 빠뜨리는 '애플의 역설'이 월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금융규제로 위기 전염성 줄여야"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월가 점령 시위대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신자유주의를 토대로 한 세계화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시위대 앞에 나서 "이런 것(카지노식 금융자본주의)은 시장경제도 아니다"고 역설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스티글리츠 보고서'에서 "금융시장 자유화가 경제성장을 강화시키는 데 의문이 제기된다"면서도 "자유로운 국제무역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헤지펀드 대가인 조지 소로스는 금융위기에 관한 영화 '인사이드 잡'에 출연해 금융 시스템을 커다란 유조선에 비유했다. "많은 양의 기름을 실은 배가 바다에 떠 있는데 충격이 와 기름이 한쪽으로 쏠리면 배가 전복할 수 있기 때문에 유조선 안에 여러 개의 칸막이를 설치해야 배 자체가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대폭 줄어든다"고 했다. 1990년대 말 이후 금융규제가 무차별적으로 폐지되고 투기자본의 국제적인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과격한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계 경제는 이제 '세계화의 장점을 보존하면서도 금융자본의 쏠림 현상을 어떻게 완화하고 제어할 것인가' 하는 매우 어려운 숙제를 넘겨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주요 20개국(G20)이 금융규제를 다시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국제통화기금도 자본 이동을 제한할 필요성을 제기한 것도 같은 이유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문 경영인들이 퇴직금을 많이 챙기고 단기적인 성과를 노리는 모럴 해저드를 막아야 한다"며 "그러나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