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경제학상 수상 특별 기고] 대기업 규모 아직 작다…글로벌 경쟁하려면 덩치 더 키워야
[다산경제학상 수상 특별 기고] 대기업 규모 아직 작다…글로벌 경쟁하려면 덩치 더 키워야
한국경제신문이 경제학자들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다산경제학상 제30회 수상자로 정갑영 연세대 교수가 선정됐다. 정 교수는 국내 산업조직에 대한 체계적인 실증분석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유기업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정 교수의 수상 소감.

먼저 다산 경제학상의 큰 영예를 안겨 준 한국경제신문사와 심사위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큰 상을 받은 것은 더없이 기쁜 일이지만,한편으론 그런 영광을 누리기에는 충분한 업적을 쌓지 못한 자신이 민망하기도 하다. 더욱 더 학문에 매진하라는 격려의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실학사상의 태두인 다산을 기념하는 경제학상을 주는 것은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내가 경제학자가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연세대에서 고(故) 한기춘 선생님을 만난 것이었다. 선생님은 대단한 열정으로 학생들을 감동시키고 미래를 향한 꿈을 심어주셨다. 리포트와 시험 답안지를 빨간 볼펜으로 수정하신 후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격려와 칭찬,때로는 호통을 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연세대에서 정창영 전 총장님과의 인연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에 선생님의 폴 새뮤얼슨 '경제학'특강을 들으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지금까지도 내가 배운 경제학의 큰 체계는 그 강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넬대에서 R 마송 교수와의 만남은 산업조직론을 전공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산업조직은 주로 시장의 효율성과 경쟁정책을 다루는 분야이므로 경제개발이 당면 과제였던 한국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분야였다.

그때부터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의 산업을 깊이 연구하는 일에 심취됐다. 처음에는 마송 교수를 대하는 게 무척 어려웠고,한국의 산업조직에 대한 자료도 구하기 힘들었다. 분석결과를 국제학회에서 발표하는 데에도 난관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마송 교수가 보여 준 학자로서의 완벽주의는 내게 큰 귀감이 되었다. 산업조직의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자료 하나 하나의 정확성을 일일이 확인하고,분석 모델의 창의성을 중시하며,항상 새로운 방법론으로 완벽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년 동안을 한 논문에 집착하는 모습은 어느 학자와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학구적이었다.

1986년 교수의 신분으로 대학으로 돌아온 나는 가장 먼저 시장의 구조에서부터 여러 산업의 특성과 성과를 분석하고,재벌이라는 독특한 조직에 대한 연구와 민영화,기업구조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제를 연구했다. 특히 한국은 고도성장을 구가하는 신흥공업국으로 수출을 중시하는 개방경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출입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선진국과는 다른 산업의 특성을 분석하는 데 좋은 모델이 됐다.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산업정책과 공정거래,재벌에 대한 규제 등 외국에서도 주목을 받는 주제가 많이 부상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기업은 재벌의 계열사로 국내에서는 지탄받을 때도 많고,규제를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을 때도 많다. 하지만 세계의 대기업과 비교하면 대부분 규모가 별로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중소기업 규모도 확대돼야 하지만 대기업의 규모도 글로벌 경쟁을 위해서는 아직 충분히 크지 않다.

한국의 바람직한 대기업 정책은 어떻게 실시되고,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이 밖에도 민영화와 지배구조,공정거래정책 등 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산업정책 이슈들이 국내에서도 급속하게 확산됐다. 당연히 전문가들이 나서 이런 현안에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여론을 주도해야 하지만,현실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1997년 외환위기는 경제학자인 내게도 큰 충격이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보면서 절실히 느꼈던 교훈은 반(反)시장적인 여론이 정책을 주도하면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초래하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역사에 '만약'의 가정은 부질없는 환상이라지만,나는 아직도 위기의 도화선이 되었던 기아차를 둘러싼 당시의 국민 여론이 시장 친화적으로만 움직였어도 우리 경제는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최근 경제회복이 지연되고 유로권의 불안이 확산되면서 시장경제의 전통적 접근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다는 지적도 많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야가 합세해 무상복지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이런 논란은 최근 등장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경제의 컨트롤타워는 시장과 정부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정부가 구원투수로 나서 어려운 국면을 수습하고,정부 개입이 과다하면 경제는 다시 효율성이 저하되는 패턴을 반복해 왔다. 이번 위기 이후에도 세계적으로 정부의 입김이 크게 강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 역시 만능은 아니다. 역사적인 성과를 보면 정부보다는 시장이 훨씬 더 많은 경제문제를 해결했다. 일시적인 부작용이나 단편적인 현안을 빌미로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면 경제성장의 궁극적인 원동력이 되는 민간의 창의와 경제활동의 동인이 약화된다.

우리 경제는 이미 위기 이전부터 정부의 힘이 지나친 부문이 너무 많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를 빌미로 정부 개입을 더욱 강화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거센 역풍을 맞게 될 것이다. 정부 규제로 원가도 제대로 보상해주지 않는 전기요금이 어떤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는가. 정부가 나서서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고,주유소의 기름 값을 통제한다면,우선은 당장 국민에게 큰 혜택을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 경제가 선진화되려면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이해수준이 높아져 인기영합적인 정책과 바람직한 정책을 선별할 수 있는 판별력을 갖춰야만 한다. 그래야만 섣부른 포퓰리즘으로 국민을 호도하는 정책이 사라질 수 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더 열심히 정진해 더욱 체계화된 한국의 산업조직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를 시도하고,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 학자로서 미력을 다하고자 다짐한다.

◆약력

△1951년생 △연세대 경제학과 △미국 코넬대 경제학 박사(1985)△연세대 경제학과 교수(1985)△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1998~2004)△연세대 원주캠퍼스 부총장(2006~2008)△연세대 경제학부 교수(현)

◆주요 논문

△대기업 정책의 현안과 과제(2008)△기업의 구조조정과 정부의 역할(2008) △기업구조조정의 평가와 과(2003)△산업과 시장구조(2001)

정리=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