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만주 하얼빈역.일제하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 일본 추밀원(일왕의 자문기관) 의장이 탄 열차가 도착했다. 그가 러시아 군대를 사열하고 막 돌아서던 순간,세 발의 총성이 대지를 갈랐다. 안중근 의사가 한반도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순간이다.

안 의사는 1879년 9월2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천주교 신자인 부모 덕분에 일찍이 신학문과 개화사상에 눈뜬 그는 독립운동가 이전에 교육자 겸 사상가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향에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는 일본 경찰 심문과정에서 "나는 대한의군(義軍) 중장 자격으로 동양 평화를 해친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것이지,개인의 생각으로 죽인 것이 아니다"고 당당하게 밝혔다. 사형 집행을 앞두고도 한 · 중 · 일 평화공존 구상을 담은 《동양 평화론》을 집필하다 순국한 안 의사.핵무기에 집착하는 북한,이를 방관하는 듯한 중국,갈수록 극우화하는 일본을 보면서 그의 외침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홍성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