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친구들을 종종 만날 기회가 있는데,그럴 때마다 "왜 트위터에 자주 들어오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필자는 "너무 바빠서"라고 대답한다. 트위터에 한번 빠지면 쉬지 않고 글을 올리는 것을 그동안 주변의 트위터리안들을 통해 봤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또 대중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좋은 수단임은 분명하다.

필자도 1년여 전쯤 트위터에 아이디를 등록했다. 몇 줄 글을 올렸는데 빠른 반응 속도에 깜짝 놀랐다. '꿈을 꾸며 노력하면 이루어진다'는 평소 생각을 올렸더니 원희룡 의원의 '공신다운 말씀입니다'라는 댓글이 곧바로 올라왔다. 당시 원 의원은 하루 종일 트위터에 빠져 있을 정도로 트위터 광이었다. 이후 불과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댓글이 수십개 달렸다. 필자는 신기한 마음에 여기에 다시 댓글을 달았고 그러고 나니 또다시 더 많은 댓글이 달렸다. 중요한 일정이 있어 급하게 몇 글자 적은 후 로그아웃했지만 마치 면전에서 말을 끊고 돌아서는 실례를 범한 것 같은 느낌에 개운치 않았다.

SNS는 보이지 않는 이웃과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이웃과는 오히려 대화가 단절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트위터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떤 가상의 집단에 의해 '또 다른 자아'가 형성되는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을 단문으로 표현하는 트위터에서 중도적인 말은 무의미하다. 말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도파는 회색분자나 기회주의자 취급을 받는 것 같다. 그래서 확실한 쪽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도록 스스로를 몰아가고 자신도 모르게 검열하게 되는 게 아닐까. 때문에 필자처럼 주장형이 아니라 수용형에 가까운 사람들은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트위터를 하는 대다수 사람이 아직은 좀 편향돼 있다는 느낌도 있었다. 컴퓨터와 친숙한 젊은 사람들은 진보적 성향이 높기 때문에 보수적인 주장에 대해서는 호의적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트위터에서는 감정적인 이야기에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그리 생산적인 일로 보이지 않았다.

기록이 남기 때문에 훗날 내 생각이 바뀌었을 때 과거의 생각을 정정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부담감도 SNS를 가까이 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다. 깊고 길게 생각한 후에 결론을 내려야 함에도 짧고 확실하게 얘기해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 달 전쯤 교회 목사님이 예배시간에 "이제부터 하루에 한 번은 트위터를 할 테니 교인들은 맞팔을 해줬으면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닌가. 그분은 "젊은 사람들 생각도 좀 들어보고,너무 편향된 트위터 문화도 바로잡을 겸 해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고민해 봐야겠다. 시간이 없기론 수만명 교인을 둔 목사님이나 필자나 마찬가지다. 젊은 사람들 생각을 들어볼 필요성 역시 정치인이 목사님보다 덜하진 않을 테니까.

고승덕 < 국회의원 audfbs@unite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