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14일.지구촌 곳곳에선 일제히 환성이 터져 나왔다. 칠레 북부 산호세 광산에 갇혔던 광부 33명이 구출되는 순간이었다. 광산이 붕괴된 건 8월6일.규모 8.8의 강진으로 500여명이 숨지고 300억달러(약 32조40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난 지 반년도 안된 상태였다.

엎친데 덮친 끔찍한 상황은 그러나 사건 발생 17일 뒤 광부 33명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반전됐다. 구조 작업과 함께 땅속 생존자들의 소식이 시시각각 전 세계로 보도되면서 크리스마스 때나 돼야 가능하리라던 구출 작전은 69일 만인 10월14일 완전히 끝났다.

칠레는 지난해 5.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지난 1월 남미 국가 중 처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됐다. 올해 경제성장률 또한 6.5%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다. 구리 가격 강세와 대통령의 중도시장주의가 한몫했다지만 광부 구출이 가져다준 의지와 희망,국민 결집력도 영향을 미쳤을 게 틀림없다.

무서운 집념은 실력을 능가하는 걸까. '나데시코(패랭이꽃) 재팬'으로 불리는 일본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2011독일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미국을 꺾고 우승,도호쿠(東北) 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로 2차 대전 후 최대 위기에 처한 일본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는 소식이다.

성인 월드컵으론 남녀 통틀어 아시아 최초라는 일본 여자축구팀의 우승은 이변을 넘어 기적으로 여겨진다. 미국은 과거 스물다섯 차례 대결에서 한번도 이겨본 적 없는(3무22패) 상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게임과 연장전 모두 선제골을 내준 뒤 동점골을 얻어 겨루게 된 승부차기에서 3-1로 꺾은,대역전 드라마였다. 신문들이 호외를 발행하고 거리마다 만세 소리로 가득한 걸 보면 이번 일이 일본인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용기를 가져다줬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패랭이꽃(石竹)은 모래밭은 물론 바위 틈에서도 자라는 강하고 질긴 생명력의 꽃이다. 기온이 섭씨 0도 이하로 내려가도 얼지 않고 씨는 약한 바람에도 널리 퍼진다. 일본 여자 축구팀의 우승을 '패랭이꽃 근성'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하거니와 패랭이꽃 근성이 일본인 전체로 확산되면 전후 일본의 부흥을 이끌어낸 힘이 다시 발휘될지도 모른다. 바짝 긴장해야 할 모양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