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서울 여의도의 신영증권 본점 지하 1층의 카페테리아.업무 마감 무렵인 오후 6시,증권사 본점 구내식당에서 난데없는 복싱대회가 열렸다. 시간 · 장소 · 상황(TPO)도 이상한데다 복서 역시 모두 여성들이었다. 관중들의 열띤 함성 속에 초반부터 스트레이트,어퍼컷이 교차하며 치열한 난타전이 벌어지더니,승부는 2회 KO로 갈렸다.

그러나 혈투를 치른 여성 파이터들의 얼굴엔 상처 하나 없었다. 경기 내내 그들은 상대방이 아니라 허공에 대고 주먹을 휘둘렀다. 닌텐도 '위(WII)'를 이용한 여직원 콘솔게임 복싱대회의 결승전 장면이다. 신영증권은 직원 경연대회로 당구 · 탁구 대회 등을 열어 왔으나,남자 직원들만의 독무대가 되자 여직원만을 위한 콘솔게임 형태의 복싱 대회를 고안했다. 모두 32명이 참가할 정도로 성황을 이뤘으며,대회를 앞두고 복싱 도장을 사전 답사한 직원들도 있었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준법감사팀 사원 옥은지 씨는 상금과 함께 영화티켓 10장을 부상으로 받았다.

회사에는 꼭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학창시절 소풍 때 장기자랑처럼 회사에도 가끔씩은 내 재주를 뽐낼 수 있는 직원 경연대회가 있다. '슈퍼스타 K'를 본뜬 노래 · 댄스 대회도 있고,광고모델 선발 오디션은 몸짱 · 얼짱 직원들을 설레게 한다. 몸보다는 머리에 자신있는 사원에게는 퀴즈대회,프레젠테이션(PT) 대회가 있다. 김과장,이대리들에게 애사심과 동료애를 느끼게 하는 사내경연대회를 살펴본다.

◆'약방의 감초'퀴즈대회

사내 경연대회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퀴즈 대회다. 상금 외에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고,시간 ·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애용하고 있다.

국내 유일의 동(구리)제련 업체인 LS니꼬동제련은 올해 처음으로 직원 TV 퀴즈 대회를 열었다. 인기 TV 퀴즈 프로그램인 '도전 골든벨'에서 따온 이 회사의 퀴즈 대회 이름은 '도전 구리벨'.시상도 상금 30만원이 걸린 1등상이 구리상이었고,2등이 금상(20만원),3등이 은상(10만원)이었다.

올해 첫 대회이다보니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이런저런 해프닝이 일어났다. 총 50개 문제 중 10번 문제도 되지 않아 60여명의 참가자들이 대부분 탈락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햅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유명한 광장 이름을 묻는 문제가 최대 난관이 됐다. '축구를 아주 잘하는 나라'라는 힌트를 주자 대부분 이탈리아 광장을 쓴 상황에서,잉글랜드 광장,프랑스 광장을 넘어 '브라질 광장','우루과이 광장' 등 남미 지역의 축구 강국까지 나왔다. 정답은 '스페인 광장'.

어려운 상식문제는 잘 맞추면서 정작 업무관련 문제는 틀리는 웃지못할 일도있었다. 평소 박학다식하기로 소문난 기획팀 H대리는 예상대로 '최후의 3인'에 올랐고,이들에게는 회사 미래비전에 대한 문제가 출제됐다. 물론 이 문제는 H대리가 속한 기획팀의 관련 업무다. 그러나 H대리는 틀리고,엔지니어링 부서 직원이 맞히는 이변이 일어났다. 물론 그는 한동안 팀장의 따가운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솜씨 뽐내고 부수입도 짭짤

김과장,이대리들이 앞다퉈 사내 경연대회에 나가는 건 자신의 숨은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좋은 성적을 내 짭짤한 부수입까지 챙긴다면 '일석이조'다.

광고회사 이노션월드와이드는 2007년부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크리에이티브 어드벤처'라는 프레젠테이션 경연대회를 열고 있다. 직원들이 2인1조로 팀을 구성해 특정 지역을 두고 탐방계획서를 제출한 후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실제로 그곳을 여행할 1~2팀을 선발하는 것이다. 비용은 물론 회사에서 전액 지원한다. 대신 돌아올 때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결과물을 가져와야 한다.

올해 이 대회에서 1등으로 뽑힌 김정민 사원은 인도의 사막을 여행하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시놉시스를 만들어 9개팀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선발됐다. 김씨는 앞으로 2주간 인도의 사막을 여행하며 직접 영화를 찍어 독립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다. 그는 "회사 경연대회에서 우승해 공짜로 해외도 여행할 수 있게 됐고 평소 꿈이었던 영화도 찍을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다.

◆밤 새워 경연대회 준비

웅진씽크빅은 지난 6일 올 상반기 혁신활동 성과를 공유하는 '이노페스티벌'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선 본부별 대표 선수 54명을 선발해 퀴즈왕을 뽑는 '혁신 골든벨'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회사가 올해 발표한 새 비전부터 지나온 역사 및 회사 트위터 새로운 계정의 이름 등 회사 관련 문제가 대거 출제됐다. 영예의 1등은 예상 외로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 박민정 씨.그는 "회사 골든벨에서 1등을 하고 싶어 예상문제까지 만들어 1주일을 꼬박 공부했다"며 "대회에서 우승한 뒤로는 알아보는 선배들도 많고 칭찬도 많이 들어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 다니는 안 모 과장은 요즘 퇴근 후엔 매일 팀 동료들과 함께 PC방을 드나든다. 매년 이맘때 열리는 스타크래프트 대회 연습을 위해서다. 팀 내 모든 그룹이 참가하는 데다 2005년부터 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대회다. 팀장 주관으로 열리기 때문에 상사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안 과장은 "스타크래프트야말로 팀워크가 무엇보다 요구되는 게임"이라며 "즐겁게 게임도 하고 후배들과 가까워질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강경민/고경봉/노경목/강유현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