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남은 1년 반을 어쩌나
대통령 5년 단임을 규정한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헌정사 20년 동안 현직 대통령의 집권여당 탈당이 거듭됐다. 임기 4~5년차에서의 탈당에 예외는 없었다. 전직 노태우(1992년),김영삼(1997년),김대중(2002년),노무현(2007년) 등의 탈당이 5년 주기로 되풀이된 것이다. 레임덕의 덫에 걸려 권력의 기반인 여당에서 배척당하고 국정 장악력을 상실한 데 따른,대개 대통령 스스로 원하지 않은 타의(他意)의 당적 이탈이다.

레임덕이 권력형 측근 비리나 이런 저런 '스캔들'로부터 비롯된 것도 공통점이다. 노태우 정권은 1991년 수서지구 특혜 택지분양 사건과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와의 권력투쟁을 버티지 못했고,다음 김영삼 정권은 외환위기와 아들인 김현철이 연루된 '한보게이트'로 몰락했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은 정현준 · 진승현 · 이용호가 만들어낸 '3대 게이트'에 이어,아들들의 금품수수 비리로 힘을 잃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임기 중반에 터진 러시아 유전과 행담도 스캔들 이후 무너졌고,아파트 값 폭등에 등돌린 민심이 치명타였다.

불행의 악순환이다. 집권 여당이 정책실패의 책임을 자신들은 지지 않고 대통령에게만 떠넘기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관행이자 책임정치의 실종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정치적 일체화(一體化)가 대통령 중심제다. 대통령이 탈당함으로써 집권당이 없어지는 비정상적 상황은 대의민주주의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결국 레임덕의 늪에 빠져들었다. 패턴 또한 예전과 같다. 지난해 지방선거에 이은 4 · 27 재 · 보선 참패,올해 초 50%대에 육박했던 이 대통령 국정지지율의 20%대 추락,비주류 출신 한나라당 지도부 등장,저축은행 비리로 인한 옛 측근의 구속 등이 방아쇠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부의 핵심 아젠다인 '감세(減稅)'를 버리고 턱도 없는 '반값 등록금'의 포퓰리즘으로 내달리고 있다. 명색 장관은 일반의약품의 슈퍼마켓 판매를 추진하라는 '대통령 지시'를 뭉갰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은 알 바 없고 약사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비호해 눈앞의 표나 긁어모으자는 정치적 행태의 극치다. 이런 식의 배신이라면 결국 대통령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진다.

이 대통령은 언제나 레임덕을 부정해왔다. 그 자신이 서울시장 임기를 마칠 때,마지막 날 오전에 준비됐던 퇴임식을 중단시키고 법정시한인 오후 5시까지 결재를 다하고 집무실을 나왔던 일을 들어 "내게 레임덕은 없다"고 강조한다. '순장조(殉葬組)'로 청와대 참모진을 개편한 것도 레임덕을 막기 위한 승부수다.

하지만 아니라고 강변한 들 레임덕은 지난 정권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이명박 정권 또한 마찬가지다. 그 단초인 민심이반은 절대적 지지의 이유였던 '경제대통령'에 걸었던 희망,살림살이가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국민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데 따른 것이다. 거시적 경제성과로 따지면 어느 때보다 좋은데도 그렇다. 물가폭등과 전세대란,일자리 불안,시한폭탄 같은 가계 빚으로 민생의 위기가 깊어진 탓이다.

피할 수 없는 레임덕이라면 힘이 떨어진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레임덕의 가장 큰 문제는 관료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과 대통령의 국정 추진력이 먹히지 않는 불통(不通)이고 보면,레임덕을 부정하는 아집(我執)은 결국 무리수를 낳게 된다. 이제 정부의 과제는 서둘러 마무리해야 할 일,할 수 있는 일을 정비해 남은 기간 역량을 집중하고,포기할 일은 과감히 버리는 것이다.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남은 1년6개월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물론 할 일이야 많겠지만 이제는 핵심적이고 분명하며 단순한 목표를 잡아야 한다. 물가,일자리,전셋값 등 민생 과제가 최우선이다. 국민들 살림살이가 보장되지 않고는 사회도 안정될 수 없고 갈등관리도 불가능해진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