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風力無限 能源無盡 現代無窮'(풍력무한 능원무진 현대무궁).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이 지난 4월8일 상하이에서 열린 '제5회 중국 국제풍력 전시회'에 참석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풍력은 무한하고,에너지도 결코 소진되지 않을 것이며,(이 사업에 뛰어드는) 현대중공업 역시 무궁할 것이다'는 뜻이다. 현대중공업이 미래 에너지 사업에 거는 기대와 의지가 이 한 줄의 글에 담겨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초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풍력발전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풍력발전기 수주에 성공했다.

#2.현대중공업은 이달 초 미국 시추전문업체 로완사로부터 11억2000만달러에 드릴십 2척을 따냈다. 이를 포함해 올 들어 수주한 드릴십만 모두 9척에 이른다. 세계 조선업체 중 가장 좋은 수주 실적이다. 지난해 처음 드릴십을 인도할 정도로 드릴십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지만,단숨에 1위 자리를 꿰찼다.

현대중공업의 최대 매력은 '성장성'이다. 2002년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할 당시 7조4000억원이었던 매출은 8년 만인 지난해 22조4000억원으로 3배 불어났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하다. 조선 · 건설장비뿐만 아니라 금융(하이투자증권),정유 · 석유화학(현대오일뱅크) · 트레이딩(현대종합상사) · 자원개발(현대자원개발) 분야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들 계열사의 실적까지 합하면 지난해 현대중공업그룹의 매출은 50조원대에 이른다. 최근엔 풍력,태양광 등 그린 에너지 사업에 뛰어들며 신성장 동력 발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세계 1위 조선사에서 종합중공업그룹으로

'31'.이 숫자는 현대중공업 경쟁력의 상징이다. 지식경제부가 인증한 세계일류상품의 개수로,세계 정상에 오른 현대중공업의 상품 수가 31개에 이른다는 얘기다. 2001년만 해도 세계 일등 상품은 선박 단 한개뿐이었다. 하지만 10년 만에 현대중공업은 자동차 차체 제조용 로봇,중속디젤엔진 발전설비,145㎸ 가스절연개폐기,대형엔진 실린더 프레임 등 비(非)선박 분야에서도 글로벌 1위 제품을 잇따라 배출하며 세계적인 종합중공업그룹으로 성장했다.

현대중공업을 지탱하는 핵심 축은 조선,엔진기계,해양,플랜트,전기전자시스템,건설장비,그린에너지 등 7개 분야다. 물론 지금까지 주축은 조선이다. 조선분야에서는 올 들어 세계 기록을 하나 더 추가했다. 전 세계 조선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누적 기준으로 1700척의 선박을 인도한 것.조선 분야 매출은 작년 7조8492억원으로,세계 '넘버 원'이다.

◆멈추지 않는 성장 엔진


하지만 요즘 현대중공업의 진가는 다른 곳에서 빛을 더 발휘한다. 2005년만 해도 전체 매출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50%를 넘었지만,지난해에는 35%로 줄어들었다. 대신 비조선 부문의 매출액은 2005년 5조원에서 지난해 14조5560억원으로 3배 가까이 신장했다.

건설장비가 대표적인 분야다. 현대중공업은 중국 시장의 성장에 힘입어 작년에 이 부문에서 3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달 중 중국 타이안시에 휠로더 공장을 완공하게 되면,중국 내에서 건설 장비의 풀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장쑤성,베이징 시 등에 굴삭기 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올해는 유럽 공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물류박람회(CeMAT 2011)에서 25개 모델의 지게차를 공개했다. 특히 국내 최대인 25t급(인양능력) 지게차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러시아,인도,중남미 등 해외 시장에서의 판매를 늘려 올해 건설 장비 매출을 4조원대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현대중공업은 도전에 익숙해 있다. 작년 9월에는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 변압기 공장을 착공했다. 국내 기업이 변압기 분야의 종주국인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은 이 회사가 처음이다. 이 공장이 완공되면 현대중공업은 울산,미국,불가리아를 잇는 글로벌 변압기 생산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세계 조선업계의 엔진 역사도 다시 썼다. 지난해 9월 선박용 대형엔진의 누적 생산량이 세계 최초로 1억마력을 돌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지난 2월에는 국내 유일의 독자개발 엔진인 힘센엔진이 누계 생산량 5000대를 달성했다. 산업용 로봇 분야에선 지난 2일 울산 공장 확장에 착수,세계 '톱3' 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미래 승부수는 그린에너지


현대중공업의 올해 경영 슬로건은 '혁신과 도전'이다. 김정래 경영지원본부장(부사장)은 "'글로벌 리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신규 시장에 뛰어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이 미래 도전 과제로 삼은 영역은 그린 에너지 분야다. 태양광,풍력 사업을 전기전자시스템사업본부로부터 분리해 올초 '그린에너지사업본부'를 신설했다.

차세대 에너지 사업에서도 현대중공업의 지향점은 '넘버 원'이다. 프랑스 생고방사와 공동 출자한 '현대아반시스'가 지난 4월부터 충북 오창에 짓고 있는 박막 태양전지 공장은 국내 최대 규모다. 음성의 태양광 공장은 지속적인 증설을 통해 현재 연간 생산규모가 600㎿에 달한다.

풍력 발전 분야에서도 국내 업체 중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 모두 풍력 발전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실제 수주 성과를 낸 곳은 현대중공업이 유일하다.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웨이에 설립하는 연산 600㎿ 규모의 풍력발전설비도 올해 중 본격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의 미래는 그린 에너지 사업에서 어떤 성과를 내느냐에 달려 있다. 성기종 대우증권 연구원은 "풍력,태양광 발전 사업은 이미 국내외에서 치열한 경쟁이 예고돼 있는 잠재적인 '레드 오션'시장"이라며 "막대한 투자금이 들어가는 만큼 얼마나 빨리 수익을 낼 수 있느냐가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