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모르는 한국 백화점] 매장 혁신으로 6년째 高성장…日백화점 "한국 배우자"
일본 'JR도카이 다카시마야'의 하나다 신이치로 종합기획실장,호소이 야츠오 영업부본부장 등이 지난 3월 초 신세계백화점 서울 충무로 본점을 찾았다. 이 회사는 철도회사 JR도카이와 백화점업체 다카시마야의 합작사로 나고야 역사 등에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방한 목적은 나고야점을 전면 리뉴얼하기에 앞서 한국 백화점의 매장운영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하나다 실장은 "한국 백화점의 성장 키포인트를 직접 보러 왔다"며 "우수고객(VIP) 대상의 고객관계관리(CRM) 전략과 개인휴대단말기(PDA)를 활용한 효율 경영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고급 쇼핑채널로 자리매김

'한국 백화점'이 전성시대를 열고 있다. 국내 백화점 산업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친 2008년 이후에도 연평균 11.5%(작년 12.5%) 성장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올 들어서도 롯데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빅3'는 기존점 기준으로 두 자릿수 매출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과 미국 백화점 업황과는 대조적이다. 각국 통계청에 따르면 일본 백화점 시장 규모는 2006년 7조7000억엔(103조원)에서 지난해 6조4000억엔(85조6000억원)으로 연평균 6%가량 감소했다. 1998년 이후 13년 연속 감소세다.

미국도 2006년 835억5000만달러에서 작년엔 655억5000만달러로 쪼그라든 반면 한국은 같은 기간 18조4000억원에서 24조3000억원으로 연평균 8% 증가했다. 국내 백화점 매출은 2004년 카드사태로 인해 줄어든 이후 2005년부터 작년까지 6년 연속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과 일본 유통전문가들은 국내 백화점들이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이유로 △자기 만족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가치소비' 확대 △명품 소비의 일상화 △고소득 전문직 여성 증가 등의 외부 환경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한 점을 꼽는다. 백인수 롯데백화점 유통전략연구소장은 "백화점에 유리한 사회구조와 소비패턴의 변화와 함께 업체들이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백화점을 국내에서 고급 소비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쇼핑채널로 만든 결과"라고 설명했다.

일본 백화점들이 불황 타개책을 찾기 위해 최고경영자(CEO)부터 실무진까지 방한 러시를 이루는 것도 한국 백화점이 '나홀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세키네 다카시 일본 센슈대 상학부 교수는 "과거 일본 백화점을 모델로 발전해온 한국 백화점을 이제는 오히려 일본이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빅3' 중심 재편으로 영향력 제고

한국 백화점의 파워가 커진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구조조정을 통해 업계가 '빅3' 위주로 재편되면서부터다. 백화점협회에 따르면 1997년 140개였던 전국 점포 수는 현재 83개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에 '빅3' 점포 수는 14개에서 50개로 늘어났다. 대형마트 확산 등으로 경쟁력을 잃은 지방 · 중소 백화점들은 도태됐지만,'빅3'는 인수 · 합병(M&A)과 신규 출점을 통해 전국 주요 상권을 장악하며 네트워크망을 구축했다.

'빅3'는 명품 유치 등으로 상품구성(MD)과 매장 환경 및 서비스의 고급 · 차별화에 성공했다. 첨단 정보기술(IT)을 점포운영과 마케팅에 선도적으로 도입해 매장운영도 효율화했다. 2000년대 초 · 중반 PDA로 입점브랜드 직원이 직접 결제하는 시스템을 도입, 점포당 백화점 결제 직원 수를 종전의 10분의 1로 줄였다. 요시오 타키노 일본 이세탄백화점 이사는 "한국 백화점은 IT를 관리에 접목해 판매는 입점업체에 과감하게 이전하고 마케팅과 판촉,서비스 환경 개선에 주력하는 '집객 모델'을 성공적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했다. 매출에서 마케팅이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은 7~8%에 이르지만 일본은 2~3%에 그치는 반면,인건비 비중은 일본이 10%를 넘는 데 비해 한국은 3~4% 수준이다.

◆지속적인 투자 통한 수익성 개선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빅3' 계열 백화점을 합산한 순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5%에 달했다. 반면 일본 7대 백화점의 지난해 평균 영업이익률은 1%였다. 국내 백화점들이 '고급 소비의 메카'로 자리잡은 데는 오너 중심의 경영구조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다. 세키네 교수는 "2000년 이후 과감하고 신속한 투자와 인력감축 등은 오너체제가 아니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