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경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장은 지난달 25일 인도네시아 공군과 국산 초음속 비행기 T-50 공급을 위한 최종 계약을 맺은 직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했다. 경남 사천 본사에 있던 수출 본부를 통째로 서울 사무소로 옮기도록 했다. "영업 부서는 고객과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사옥도 중림동으로 옮겼다. 30일 신사옥에서 만난 김 사장의 구상은 벌써 다음 수주를 향하고 있었다. "2014년께 결정될 11조원짜리(T-50 약 350대) 미국 프로젝트를 따내는 것이 최종 목표"라며 "폴란드,이스라엘에서도 내년쯤이면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 확대의 밑거름이 될 상장 절차도 빈틈없이 진행하고 있다. 김 사장은 6월 7~10일 홍콩,싱가포르에서 기업설명회를 열어 투자자들에게 KAI의 꿈과 도전을 설명할 계획이다.

◆'민수(民需) 마인드'를 갖춰라

1999년10월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결과로 대우중공업,삼성항공,현대우주항공을 합해 항공 통합법인으로 출발한 KAI는 꽤 오랫동안 '미운오리' 취급을 받아야 했다. 2009년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넘길 때까지만 해도 연 매출은 거의 제자리걸음이었다.

해결책으로 김 사장은 "민수,고객,상생" 세 가지 원칙을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방위산업체 특유의 낡은 생각을 깨자는 것이 골자였다.

2008년 KAI 경영을 맡은 뒤 가장 먼저 원가 구조를 바꿨다. 그는 "실제 들어간 비용을 사후 정산해주다 보니 비용 개념이 없고 글로벌 경쟁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었다"며 "취임하자마자 민수 마인드를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모범을 보였다. 항공편은 국내선에선 이코노미석만을 이용했고,국제선은 절대 1등석에 타는 일이 없었다. 호텔에 투숙하면 그 호텔에서 가장 저렴한 방에서 묵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70여 협력업체 지원과 육성에 힘쏟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2003~2006년)을 지낸 경험을 살려 취임과 동시에 상생협력센터를 만들었다.

'고객 우선주의'도 김 사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인도네시아를 방문할 때마다 그와 임직원들은 현지 전통 의상인 '바트'를 무조건 입었다. 해외 바이어들이 한국에 올 때 한복을 입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T-50 인도일도 통상 24개월 걸리는 걸 18개월로 단축시켜주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공군이 하루빨리 받기를 원한다"는 게 이유였다. 목표를 맞추기 위해 KAI 직원들은 아직까지도 자축연조차 하지 못했다.


◆"T-50 수출은 대한민국 모두의 공로"

'백조'로의 변신은 세계가 먼저 알아줬다. 올해 1월 보잉사의 1차 협력업체에 선정돼 비행기 날개의 갈비로 불리는 '윙립'을 공급했다. 2008년 7월 에어버스의 1차 벤더로 지정된 데 이어 두 번째 쾌거다. 이달 초엔 보잉으로부터 최우수 공급업체에 지정되기도 했다.

김 사장은 "전 세계 어떤 비행기든 그 속엔 KAI의 제품이 어떤 형태로든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소개했다.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초음속 항공기를 수출한 덕분에 향후 폴란드,이스라엘,미국 등으로의 T-50 수출 전망도 한층 밝아졌다. 폴란드는 6월 초에 24대의 훈련기를 구입하기 위해 정식 제안요구서(RFP)를 한국,이탈리아,영국 등에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총 30대를 구매할 예정이며,한국과 이탈리아가 경합하고 있다. 김 사장은 "미국이 최대 관건"이라며 "350대에서 많게는 450대까지 주문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사장이 생각하는 한국 항공산업의 단계는 어느 정도까지 와 있을까. "대형 항공기만 조립하지 않을 뿐 실력은 충분히 갖췄다"고 자신했다. 그는 "항공만큼 제조업 전반에 연관 효과가 큰 산업은 없을 것"이라며 "예컨대 KAI 직원들 중 자동차 업체 설계팀으로,풍력발전기 제조업체로 영입돼 나간 사람들이 꽤 있는데 기술의 확산효과라고 생각해 굳이 막지 않았다"고 말했다.

T-50 외에도 차세대 전투기,공격형 헬기,중형 민항기 등을 개발하는 것이 KAI의 목표다. 이를 달성하려면 투자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증권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 31일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등 상장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6월23~24일 공모를 하고 다음달 30일 상장할 계획이다. KAI 지분은 정책금융공사가 30.1%,삼성테크윈과 현대자동차가 각각 20.7%,범두산계열(디아이홀딩스 · 오딘홀딩스)이 21.0%를 갖고 있다. 공모가와 관련,김 사장은 "국민기업인 만큼 높게 받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에둘러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