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부자는 지금] 압구정 사는 최변호사 강 건너 뚝섬으로 이사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변호사 최모씨(57)는 지난 3월 아내와 집 근처에서 외식을 마치고 산책 삼아 강 건너 뚝섬 서울숲으로 향했다. 우뚝 솟은 '갤러리아 포레'를 발견하곤 샘플하우스를 둘러봤다. 115만㎡ 규모의 서울숲공원과 한강 조망에 반해 며칠 후 전용면적 195㎡형 한 가구를 계약했다. 다음달 말 이사할 예정이다. 그는 "압구정동이란 브랜드를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번잡하고 시끄러운 주변 거리가 늘 마음에 걸렸다"며 "서울숲과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쾌적함에 끌려 계약했다"고 말했다.

최씨의 아내는 '탈(脫) 강남커뮤니티'를 반대했다. 재테크 정보를 얻고 자녀 교육 소식을 나누는 각종 모임이 강남에 사는 큰 장점 중 하나여서다. 그는 "커뮤니티도 중요하지만 중년 이후엔 쾌적함이 중요하다"며 아내를 설득했다. "녹지 가치가 커지면 시세차익도 늘어날 것"이란 설명도 아내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일조했다.

◆쾌적함 좇아 탈강남 러시

'강남 주변'으로 눈길을 돌리는 강남 부자들이 늘고 있다. 복잡한 강남보다 인근에서 더 쾌적한 환경을 누리며 살 수 있어서다. 이들은 강남 주변에 대해 '강남의 생활 기반을 충분히 누리면서 주거환경은 더 나은 곳'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갤러리아 포레에 입주하는 200여가구 중 65%는 강남에서 이주해오는 수요다. 국내 최고가 아파트인 '삼성동 아이파크'에서 옮겨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강을 등진 강남 아파트들과 달리 한강이 남쪽인 데다 대규모 녹지의 쾌적함도 가치를 따질 수 없어 탈강남 행렬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생활 수준이 나아질수록 녹지의 가치는 커진다고 입을 모은다. 김점수 LBA경제연구소장은 "앞으로 부동산의 가치는 녹지와 수변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며 "여유가 있을수록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주거공간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급 단독주택에도 관심

고급 단독주택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판교신도시 일대도 강남 부자들이 주목하는 지역 중 하나다. 강남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아 각종 인프라를 고스란히 이용하면서 전원생활 분위기를 누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토산을 끼고 있어 자연녹지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게 장점이다.

고급 주택 전문 분양대행 업체인 미드미디앤씨 이월무 대표는 "강남에 비해 녹지가 많아 쾌적한 판교로 이주하는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며 "유럽처럼 강남 부자들도 다닥다닥 들어선 도심 내 아파트에서 교외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주요 그룹이나 대형 기업체 오너들이 판교로 이주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직장이 있는 서울 도심이나 강남을 완전히 벗어나지 않으면서 주거 환경이 우수한 판교에 고급 주택을 짓거나 타운하우스를 분양받는다는 것이다. 최근 대장동 시흥동 등 판교신도시에는 단독주택 시세가 20억~30억원에 이르는 '신흥 부촌'이 형성되고 있다.

◆부동산 가치 높이는 녹지

선진국일수록 대규모 녹지 주변의 집값이 높은 게 일반적이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영국 런던의 하이드파크 주변 부동산 가치는 매우 높다. 센트럴파크 인근 아파트인 트럼프타워는 3.3㎡당 1억원을 웃돈다.

국내에서도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 이런 현상이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울숲 인근의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조망이나 녹지 환경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국내에서도 그런 무형의 가치들이 금액으로 평가받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용산 일대가 주목받는 것도 대규모 개발 호재뿐 아니라 인근에 여의도 크기로 조성될 용산민족공원 영향이 적지 않다.

황용천 해밀컨설팅 사장은 "앞으로 서울 강남과 인접하면서도 쾌적한 주거 환경을 갖춘 고급 주택들의 가치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