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엄격 입증 거쳐 계약부정해야 罪성립"

차명 예금계좌의 명의자가 은행을 상대로 예금을 지급해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패소했더라도 사기미수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타인이 개설한 예금계좌에 자기 명의를 빌려주고서 자신이 예금주라며 소송을 내 예금을 편취하려 한 혐의(사기미수 등)로 기소된 한모(55)씨에게 징역 1년8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 합의부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금융실명제법하에서 예금명의자가 아닌 출연자 등을 예금계약의 당사자(예금주)로 보려면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와 매우 엄격한 입증 과정을 통해 예금계약을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은 그런 증거가 없어 예금명의자인 한씨를 예금주로 봐야 하기 때문에 그가 예금지급 청구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어도 사기미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승려인 한씨는 2001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은행에서 고모씨에게 명의를 빌려줘 3억원을 1년 만기로 예금하게 하고서 이듬해 자신이 실제 예금주라며 예금지급 청구소송을 냈다가 2004년 대법원에서 패소가 확정된 뒤 사기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2심 재판부는 시주받은 돈을 예금한 것이라는 거짓 주장으로 예금지급 청구소송을 내 고씨의 예금을 편취하려 했다는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8월을 선고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