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계의 한 획을 그은 작곡가 고(故) 이영훈의 노래로 엮은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뮤지컬 '광화문연가'(사진)는 상반기 기대작 중 하나였다.

지난 주말 막을 내린 이 작품은 기대를 반영하듯 2주 동안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객석점유율 약 70%를 기록했다. 음악적 향수에 젖은 30~40대의 티켓 파워에 '마굿간(이문세 팬클럽)'이 더해지고,'광화문연가를 광화문에서 본다'는 심리적 유인까지 겹쳐졌다. 경쟁작이라 할 만한 대형 뮤지컬도 없어 삼박자가 딱 맞았다. 하지만 흥행 성과가 작품성과 비례하진 않았다.

극은 유명 작곡가 한상훈이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됐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그는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최여주에게 반해 가수로 데뷔시킨다. 그가 고백은 못하고 머뭇거리는 틈을 타 친한 대학 후배가 여주에게 먼저 사랑고백을 하고 둘은 사랑을 나눈다. 시위를 벌이다 군에 끌려가게 된 후배를 대신해 여주를 돌봐주던 그는 후배가 제대하자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떠난다.

1막의 스토리는 여기까지다. '광화문연가' '깊은 밤을 날아서' '그녀의 웃음소리뿐' '옛사랑'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 주옥같은 이영훈의 노래들이 1막과 2막을 통해 30곡이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동안 스토리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영훈의 음악을 어지럽게 늘어놓고 엇비슷한 대사와 스토리를 끼워넣은 것 같다.

게다가 1막에서 이영훈을 연상케 하는 주인공 한상훈의 창작과 사랑의 떨림을 소재로 하다가 2막에서는 헌정 공연으로 탈바꿈한다. 새삼스럽게 '병과 죽음'을 모티브로 무대 위에서 장례까지 치른다. 서정적인 장면에서 갑자기 추모공연으로 탈바꿈하더니 커튼콜에서는 콘서트장을 연상시키는 강한 비트와 현란한 조명으로 댄스 버전의 '붉은 노을'을 합창한다. 이영훈을 추모하며 만든 작품이라고 했지만 이영훈도,이문세도 없었다. 다수의 작품에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이지나의 이름도 맥을 못 췄다. 한국형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사라져가는 운동권 학생들의 이야기,광화문이라는 장소의 한계 속에서 '광화문연가'는 아쉬움만 남긴 채 막을 내렸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