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재스민 혁명,일본 대지진 등 당초 예기치 못한 행태 변수가 잇달아 발생함에 따라 각 예측 기관의 올해 경기 전망과 증권사들의 주가 예측이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올해 코스피지수를 최고 2800까지 내다봤던 주가 전망이 들어맞지 않는다면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일부 증권사의 주가 예측은 3년 연속 빗나가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투자자들이 간헐적으로 제기해온 '주가예측 무용론'이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장 큰 이유는 예측하는 데 있어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최근 효과(recency effect)' 탓이다. 예측자의 행태상 10년 전보다 직전 연도가,직전 연도보다 예측 당시의 상황이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추세가 바뀌거나 종전에 비슷한 사건이 없을 경우 예측이 크게 틀리는 것도 바로 이런 요인 때문이다.

대부분의 증권사가 올해 증시를 낙관적으로 봤던 것은 '2011 증시포럼'이 연이어 열렸던 작년 12월 전후 상황과 관계가 있다. 당시 미국 증시를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좋았다. 흔히 좋을 때는 앞날을 더 좋게 보고,나쁠 때는 더 나쁘게 보는데 이를 '냄비예측(또는 천수답예측)'이라고 부른다. 불을 가하느냐 여부에 따라 쉽게 끓고,쉽게 식는 냄비의 속성에 비유한 말이다.

하지만 예측이 틀렸던 것만은 아니다. 리먼 사태 이후 새로운 경기 진단 수단으로 각광받는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복합선행지표(CLI · Composite Leading Index)는 2009년 2분기 저점이 형성될 것이란 예측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OECD가 매월 발표하는 이 지수는 경기 순환에서 전환점에 대한 조기 신호들을 제공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또 국제통화기금(IMF)의 기업취약지수(CVI · Corporative Vulnerability Index)는 2009년 이후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고 올해는 다소 둔화될 것으로 예고했다. 이 지수는 기업가치 변동성과 무위험 이자율,배당률 등의 재무지표를 이용,산출된 것이다. 과거 주가 판단 방법이 경제상황과 정책 기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감안해 만든 지표다.

최근에는 '대차대조표 경기변동이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리처드 구 일본 노무라연구소 수석경제학자가 고안한 것으로,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의 대차대조표를 감안해 경기와 증시를 예측하고 정책을 권고하는 방법이다. 금융사의 대차대조표가 취약하면 중앙은행이 자금을 공급해도 민간에 대출이 안 돼 경기와 증시가 침체된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대지진이 발생하자 이 이론이 부각되는 것은 일본처럼 실물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대형 은행들의 대차대조표가 건실해야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이 강화되고 경기가 빨리 회복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때처럼 정부가 주도해 지진 복구에 힘을 쏟다 보면 대형 은행이 더 어려워지고,자기책임 원칙대로 방치하지 못하는 이상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어 경기가 더 침체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정책 권고다.

한 나라 경기와 증시는 고도의 복합시스템이다. 그럼에도 예측기관들은 지나간 과거를 토대로 예측 모델을 개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모델은 현실세계를 단순화시켜 주가 변동을 유발하는 복합변수들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다.

그동안 예측기관과 증권사들의 경기 · 주가 예측을 돌이켜보면 이런 모델들의 비효율성이 자주 노출돼 왔다. 정작 예측이 필요할 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증시 입장에서 더 우려되는 것은 주가 방향이 바뀌고 있거나 게임의 규칙이 변한 뒤에야 비로소 터닝포인트를 알린다고 요란을 떠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경기와 증시의 복잡성은 대부분 국내 예측기관과 증권사들이 의존하는 것처럼 불과 몇 개의 선행지표로 포착할 수 없다. 미국 경제사이클연구소(ECRI · Economic Cycle Research Institute)의 예측 모델이 이 분야에서 세계를 평정할 정도로 예측이 정확하고 평가를 받아온 것은 바로 '경제 혹은 증시 사이클 큐브'라는 다차원적 모델 덕분이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또 '예측 무용론'에 시달리는 증권가…돌파구는?
ECRI의 경제 사이클 모델은 현실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다양한 지표를 통해 경제의 모든 측면에서 형성되는 방향성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경제의 복잡성에서 유발되는 뉘앙스와 추세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만이 최선이자 유일한 대안으로 꼽힌다.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잇따라 발생한다고 해서 예측 자체가 무용지물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정확한 진단과 예측이 요구된다. 최근처럼 경기 · 증시 판단이 어려워질수록 예측기관과 증권사들은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기법을 고안해 경제주체와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어 나가야 한다.

한상춘 객원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